[경상일보-울산대 인문대학 공동기획 - 책을 말하다 ②]울산지명사·반구대암벽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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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울산대 인문대학 공동기획 - 책을 말하다 ②]울산지명사·반구대암벽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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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2.1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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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호태 울산대학교 교수 역사문화학

도서관은 기억의 저장고다. 인간 사회의 역사, 문화, 예술이 책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곳이다. 수십 만 년을 헤아리는 인류의 발자취가 문자로 기록되고 인쇄된 상태로 쌓여 있는 곳이 도서관이다. 과거로부터 미래로 가는 길목에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도서관은 인간 사회의 어떤 시설보다 귀중히 여기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울산대학교 중앙도서관에는 울산연구자료센터(이하 센터)가 있다. 울산에 대한 온갖 기록을 모아둔 곳이다. 이 센터는 인문, 예술을 포함한 온갖 기록을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울산광역시의 첫째 가는 울산학 곳간이다. 이 센터에서 만날 수 있는 귀중한 도서 자료 가운데 하나가 <울산지명사(이유수, 울산문화원, 1986)>와 <반구대암벽조각(황수영, 문명대, 동국대출판부, 1984)>이다.

출간된 지 40년이 되었거나, 되고 있는 이 책들은 희귀본이 아니다. 그러나 각각 울산지명의 유래를 처음을 집대성한 책,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에 대한 최초의 실측 보고서다. 출간 당시부터 높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 받은 두 책은 시간이 흐를수록 학계와 시민 모두의 보물로 사랑 받을 만하다는 점에서는 귀중본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울산지명사>는 울산문화원의 기획물로 준비되고 출간되었다. 저자인 향토사학자 이유수 선생이 수십 년 동안 울산 전역을 구석, 구석 다니면서 수집한 지명 유래 관련 설화, 근대 도시로 발돋움하기 이전 울산이 겪은 역사 문화에 대한 기록,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울산의 행정 단위가 바뀌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사료, 조선시대 울산 일원 호구 수의 변천 과정과 그 의미를 살펴본 사론 등을 하나로 묶은 책이다. 한국 향토사 연구의 모범이 된 최고의 저술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울산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울산 안팎의 문화인과 학자들 사이에서 울산의 마지막 선비로도 일컬어지던 이유수 선생은 한학자로서의 지식과 품위를 모두 갖춘 분이었다. 근래 활발한 유적 조사 결과 알려지지 않았던 울산의 선사시대가 실상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역사시대의 유적 다수는 유적 발굴 결과 보고서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한번쯤은 <울산지명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정도로 이 책은 울산의 모든 마을이나 산천에 얽힌 세세한 학술 정보를 한 자락씩 담고 있다. 울산 향토사 연구뿐 아니라, 울산학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지역학 연구는 <울산지명사>를 발판으로 첫 걸음을 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문화재청이 유네스코에 정식으로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한 ‘반구천 암각화’는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각석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용어다. <반구대암벽조각>은 두 암각화 유적, 곧 신석기시대에 울산 앞바다에서 이루어진 고래 사냥 경험과 관련 깊은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1971년에, 신석기시대부터 신라시대를 거쳐 근대까지 바위 신앙의 현장으로 남아 있던 천전리 각석을 1970년에 발견하고, 실측 조사한 동국대박물관 학술조사단의 공식적인 조사 결과물이다. 지역 사회에서 그냥 그런 것이 있다는 정도로 알고 있던 선사 및 역사시대의 귀중한 유적이 국보로 지정되고, 나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이 되기까지 이른 데에는 <반구대암벽조각>이라는 조사 보고서가 디딤돌로서 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반구대암벽조각>에 실린 사진과 탁본 가운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것은 대부분 물에 잠겨 있던 유적이 모습을 드러낸 뒤 작업이 진행된 것이어서 이후 수십 년 사이에 이루어진 변형과 훼손 이전, 원형에 가까운 암각 상태를 잘 보여준다. 이 점에서 이 자료들은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유적이 발견, 조사된 뒤 10여 년 넘는 기간 동안 보고서 준비에 애썼던 동국대박물관 연구자들의 노고가 이 한 권의 책에 배어 있음을 고려하면 <반구대암벽조각>의 가치와 의미는 새삼 필설로 평가하기도 마땅치 않을 정도다.

울산은 선사시대부터 인구가 밀집하고 문화와 예술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기후 환경이 양호하고 물산이 풍부했던 울산은 청동기시대 한반도에서 가장 번성했던 지역이었고,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신라의 대외 교역을 담당하면서 최고의 선진 문물이 들고 나던 곳이다. 울산은 선사 및 역사 유적의 밀집도가 매우 높아 작은 건물 하나 지으려 해도 유적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한국 전역에서 유적 조사가 가장 활발하고 유적 조사 보고서가 가장 많이 출간되는 지역이 울산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점에서 울산대 중앙도서관의 센터는 울산에 대한 모든 기록이 집성되고 서비스 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센터가 설치돼 울산에 관한 기록들이 지속적으로 수집, 정리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앙도서관은 지역 학술문화정보 센터로서의 기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상당한 분량의 기록 정보가 센터에 소장된 상태지만, 오래전 발간된 뒤 절판 되거나 재발간이 요원한 지역 관련 도서 자료가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발굴 수집될 필요가 있다. 울산대가 인구만 110만에 이르는 울산광역시의 유일한 종합대학이고, 중앙도서관이 오래전부터 지역사회 학술 정보와 문화의 집성지로 기능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도서 자료의 디지털 정보화가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지만, 전기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곳에서는 디지털 정보가 무용지물이다. 이를 고려하면 언제든 손에 쥐고 펼쳐볼 수 있는 인쇄본 책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는 말로 다하기 어렵다. 울산학 자료는 특히 그렇다. 이런 점에서 울산대의 이 센터는 역사의 손때가 묻은 지역학 도서 자료를 원본대로 유지, 보관하는 유일한 장소이자 서비스 기관으로서 위상을 유지하는데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디지털 만능 관념이 확산되는 지금이 울산연구자료센터에 대한 지역사회 시민과 학생, 행정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더 필요한 때가 아닐까?

전호태 울산대학교 교수 역사문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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