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기술의 진화, 관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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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기술의 진화, 관계의 변화
  • 경상일보
  • 승인 2024.02.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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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꽤 예전, 적어도 15년 이상 전에 어느 병원에서든 진료 받으셨던 분들은 아날로그로 뽑은 큰 흑백의 환부 사진을 의사가 광조명에 투과시켜 살피는걸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당시엔 X선을 이용해 환부를 촬영하면 필름으로 나왔고 거기에 현상액을 뿌려 사진으로 만든 후 빛에 통과시켜 보면서 판독을 했다.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인데 의외로 2010년대까지도 그걸 쓰는 병원들이 간간히 있었다. 지금은 기술의 진화로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요새는 대부분 영상정보전송시스템(PACS)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쓰고 있고 판독용 정밀 모니터로 환부를 본다. 기술의 진화로 오류가 줄어들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기술의 진화는 그 영향이 의술 자체를 넘어 병원 혹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변천사를 통해 살펴보자.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은 얼마전 영상정보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했다. 제타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울산지역 종합병원 중 최초로 설치했는데, 구성 및 정밀도도 인상적이었지만 영상이 전송되는 속도가 놀랄 정도로 빨랐다. AI 시스템 역시 같이 탑재시켰다. 큰 사진을 이리저리 보며 찾던 시대가 아직 기억에 생생한데 격세지감이 크게 느껴진다.

그런데 한발 떨어져 생각해보면, 영상을 포함한 환자 개개인의 의료정보를 누가 관리하는가라는 관점에선 지금이나 이전시대나 큰 차이가 없다. 환자의 의료정보는 이전에도 지금도 주로 병원에 머무르며 병원은 현행법상 의무적으로 10년간 이를 보관해야 한다. 물론 이전이나 지금이나 환자는 의료기록을 출력해서 자유로이 소유할 수 있다. 예전에는 큰 사진을 뽑아다녀야 했지만 지금은 휴대용 USB 등으로 출력받을 수 있으니 편해진건 맞다. 하지만 그걸 실제로 뽑아서 직접 소유하고 있는 경우는 잘 없는게, 평소에 따로 가지고 있다해서 활용할 수 있는게 현재로선 크게 없으니 필요를 못 느끼고 그래서 원할 때 본인의 의료정보가 있는 병원에 방문하는 형태로 진료가 행해진다.

사실 의료정보를 개인이 갖고 다니는 경우는 환자분의 필요보다 병원과 병원 사이 정보교류가 필요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하다. 지역의 병원들에서 좀더 깊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분들을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으로 의뢰해주는 경우가 한해 4000명 가까이 있는데, 이럴 때 각 병원의 원장님들이 환자분에게 검사결과 및 영상, 의견서 등의 의료정보를 출력해 가도록 한다.

좀더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환자가 물리적 정보를 직접 병원으로 전달하는게 아닌 환자 동의하에 병원과 병원이 바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크게는 현재 진료정보 교류 사업을 국가적으로 조금씩 확대 중이고, 지역적으로는 얼마전 울산대학교 병원과 교류하는 병원들이 환자 동의 하에 정보공유 및 병원안내가 가능한 플랫폼을 공유했으며 울산병원도 공유 중이다. 아직 시작 단계라 지역 내 60개 병원만 참여하고 있지만 점점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조금 더 미래를 예상해보면 아마 환자 개개인이 본인의 의료정보를 클라우드에 저장해두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은 현재 국가에서 건강정보 고속도로라는 이름의 사업으로 조금씩 진행하는 중이다. 정립되면 여러 활용처가 생길 것이다. 예를 들어 환자가 원하는 의료기관을 골라 본인의 의료정보를 의료진에게 원격으로 보내어 체크를 받거나 방문 전 전달해서 진료절차를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환자 동의 하에 환자의 의료정보를 연구에 활용하는 과정도 더 수월해질 수 있다. 핵심은 어느 특정병원에서 발생된 진료기록은 그 병원에 본의 아니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소유임은 물론 어느 곳에서든 환자가 원하는대로 공유가 가능해진다는 것이고, 이는 병원과 환자가 갖는 고전적인 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병원 입장에선 법개정이 따른다면 10년간 의무로 보유해야 하는 엄청난 양의 의료기록 보관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가까운 미래엔 의료기록을 클라우드에서 같이 공유해서 쓰고 개별 병원이 보유할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 물론 범지역적인 보안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렇듯 기술의 발전은 많은 것을 바꾸고, 그렇게 작은 변화들이 쌓이다보면 결국 큰 변화로 이어진다. 앞서 봤듯 이런 미래를 향한 범지역적 사업들은 이미 조금씩 진행 중이다. 내년 이맘때는 무엇이 또 어찌 바뀌어있을지 벌써 궁금해진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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