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여의도에서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회 측 추산 약 4만명의 의사들이 집회를 열고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 준비 안 된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학교육의 훼손 등을 주장했다. 정부는 27년간 지체된 의료 개혁이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하며, 지역과 필수 의료를 살리는 근본적인 개선책으로 의사 수의 확대와 필수 의료 정책패키지를 제시했다. 의협 측은 정부가 기습적으로 발표한 대규모의 의대 정원 증원 계획(현재 배출되고 있는 3000여명 졸업생의 67%에 달하는 2000명 증원)은 전반적인 보건의료제도와 국가 재정, 국민 부담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며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도 의사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정책을 의료 개혁이란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추진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역 간의 의료 인력 불균형, 지역 의료 인프라의 감소, 그로 인한 환자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 수도권 의료의 과밀화, 전공의 쏠림 지원 현상 등, 그동안 미뤄왔던 의료 개혁의 결과가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 보니 소위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지역·필수의료 붕괴 현상으로 나타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사들도 자녀 교육 등 일상 생활이 유리한 대도시에서의 진료를 선호하는 입장으로 보이고, 지나칠 정도로 저렴하게 책정된 보험수가로 노력 대비 수입이 적은 중증 응급진료를 포함하는 필수 의료를 기피하고 비급여 항목이 많은 진료를 선호하는 추세로 보인다. 그러므로 단순히 전체 의사들의 숫자를 늘인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보지 않는다.
의료진의 희생에 비해 턱없이 낮은 필수의료에 대한 적절한 수가, 업무량이 많은 필수 의료진의 삶의 질을 보장해줄 충분한 인력 확보도 중요해 보인다. 의대 정원 확대의 주요 근거는 2035년경 약 2만7000명 정도의 의사 부족이 예상된다고 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연구 결과와 2023년 발표 OECD 국가의 국민 1000명당 평균 의사 수(3.7명) 대비 우리나라 의사 수(2.2명)가 현저히 적다는 통계이다. 여러 연구들에서도 인구 고령화로 급격히 증가하는 의료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론도 만만치 않은데, 급격한 출산율의 감소로 최근 인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의대 정원 증원은 오히려 배출되는 의사의 숫자가 필요한 수요에 비해 급속하게 과잉되어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공정한 보상, 근무환경 개선 등을 약속하며 필수의료 분야의 사법적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의료사고처리특례법안을 조속한 시일 내 입법 발의할 계획이다. 또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에서 종사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필수의료 수가를 집중 인상하며, 공공정책수가와 대안적 지불제도를 통해 혁신적으로 보상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필수의료 인력의 지역의료 유입을 위해 지역인재전형 비율을 60% 이상 늘리고 파격적 정주 지원 등과 연계한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며 지역 인프라 개선을 위해 권역별로 최대 500억원을 투자하고, 지역 수가를 적용하며 지역의료발전기금도 신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는 이러한 필수의료 정책이나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의료 정책의 변화에 있어, 해당 당사자인 의사단체와 사전 협의나 협조에 있어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파업 중인 전공의들은, 현재 국내 의과대학의 정원과 지역 분포가 고르지 못해서 의대와 의대생의 지역 편중이 심각한 상태인데, 만약 기존 의과대학의 정원을 급격히 늘려 2000명의 의대생을 수용하게 되면 지역 간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의학 수련환경 악화도 예상되고 교육의 질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만약 의료계와 정부가 이러한 문제를 서둘러 잘 합의해 적절히 순차적으로 정원을 늘려왔으면, 이러한 급격한 증원으로 서로 간의 갈등을 유발해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욕속부달(欲速不達)! 새겨 볼 말이다.
손재희 CK치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