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혁의 유유자적(1)]자유인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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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혁의 유유자적(1)]자유인이 무엇인가요?
  • 경상일보
  • 승인 2024.04.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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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혁 UNIST 명예교수 전 울산연구원 원장

고대하던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직을 기쁜 맘으로 막 시작하던 때에 대학 사무처로부터 퇴직연금의 여러 부가사항들에 대해 선택을 하도록 요청받았다. 약 삼십년 후의 일을 대비하는 것이라서 실감이 나지 않았고 심지어 ‘은퇴’라는 말 자체가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평균보다 훨씬 긴 기간동안 근무하고 70.5세에 드디어 은퇴를 맞았다.

은퇴 후 특강을 하게 된 어느 모임에서 사회자가 나의 경력을 소개한 후 “지금은 잠시 쉬고 계십니다”라고 끝맺음했다. 나는 당황하여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일을 하는 대신 자유인으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정정했다. 왜냐하면 마치 정상인에서 밀려난 듯한 느낌을 주기보다는 은퇴 후의 새로운 삶을 당당히 영위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평균 연령을 90세로 보면 0세에서 30세까지는 준비기, 30세에서 60세까지는 사회활동기, 60세에서 90세까지는 은퇴기 혹은 자아실현기로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평균 연령이 훨씬 짧았던 예전에는 자아실현기라는 개념이 없었다. 물론 현재에도 재정적 어려움과 건강이 좋지 못한 노령층들은 자아실현기라는 개념을 실현하기가 어렵다. 재정적 안정과 좋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은퇴자들이라 할 지라도 준비되지 않은 은퇴를 맞아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모델이 없기에 여행 혹은 취미생활 등으로 각자도생하고 있다.

일본의 호스피스재단에서 2023년 한일 양국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백세까지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한국에서는 50.1% 그리고 일본에서는 22.0%가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하지만 ‘백세까지 살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조금이라도 더 인생을 즐기고 싶어서’라는 항목을 한국에서는 31.9% 그리고 일본은 68.2%가 선택했다. 요약하면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은 한국이 두배나 크지만 인생을 즐기려는 욕망은 일본의 절반 수준이었다. 은퇴기가 자동적으로 자아실현기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식과 준비가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외재적 접근 즉 외부인의 관점에서 나를 정의하게 되고 명함에 표시된 것처럼 현재 하는 일이 자신의 정체성을 대표한다. 은퇴 후에는 이것이 사라짐에 따라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어 ‘백수입니다’ ‘놀고 있습니다’ ‘자연인이 되었습니다’ 등으로 약간 미안한 듯이 자신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은퇴기를 자아실현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해 내재적 접근 즉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설정하고 당당한 은퇴 후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유유자적(悠悠自適)’을 은퇴 후 삶의 지침으로 삼고 명함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만들지 않았다. 그랬더니 상대의 명함을 받고도 빈손을 내미는 것이 예의가 아닌 듯하여 명함의 전면에 ‘자유인’이라고 기재하고 후면에 약력을 참고용으로 적었다.

‘유유자적’이란 속세에 얽매이지 않고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산다는 의미이다. 한자의 뜻을 찾아보면 ‘유’는 ‘멀다’는 뜻인데 반복했으니 ‘멀고도 먼’이 되는데 무엇에서 멀다는 것인가? 속세 즉 정치와 사회같은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줄이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은퇴 후 제일 먼저 부닥치는 문제는 시간관리인데 자율적인 규칙을 정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오전에는 독서 혹은 강좌 등을 듣고 오후에는 헬스장에 가거나 걷기 등을 하며 주말에는 등산·트레킹·답사여행 등을 한다. 바쁘지도, 그렇다고 할 일이 없어 무료하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내 스케줄을 온전히 내가 관리할 수 있다는 여유와 성취감이 있어 좋다. 예를 들면 내장산 단풍 혹은 광양의 매화 구경 등은 혼잡한 인파와 교통편 때문에 은퇴 전에는 상상도 못 했지만, 주중에 미리 가서 숙박하면서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었다.

‘유유자적하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속박을 받고 있는지, 어떤 걱정이 있는지, 어떤 부족함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자명하게 된다.

임진혁 UNIST 명예교수 전 울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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