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어버이날에 생각하는 인문학 속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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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어버이날에 생각하는 인문학 속의 ‘어머니’
  • 경상일보
  • 승인 2024.05.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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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해 시인·전 울산문인협회장

‘나무가 고요히 머물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사서삼경 중 하나인 <시경(詩經)>의 해설서 <한시외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자녀 낳기를 꺼려 인구절벽이 심화한 요즘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라는 말은 거의 용도폐기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어버이를 여읜 슬픔을 의미하는 ‘풍수지탄(風樹之歎)’은 나라 잃은 슬픔이라는 ‘맥수지탄(麥秀之歎)’과 함께 자주 인용되는 고사성어이다.

우리는 모두 어버이의 자식인 동시에 누군가의 어버이이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도 부모·자식 사이에는 하늘이 맺어준 각별한 인연이 존재한다. 그 내리사랑인, 부모의 자식 사랑은 형언할 수 없이 깊은 것이어서 역사와 문학작품을 통해 수많은 시인·묵객이나 역사가들이 끊임없이 칭송하고 노래하였다.

송나라 유의경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모원단장(母猿斷腸)’이라는 말이 나온다. 동진(東晉)의 군대가 촉(蜀)나라를 치려고 양자강을 지날 때, 한 병사가 새끼원숭이를 사로잡아 배에 싣자 어미 원숭이가 100리 길을 울며 쫓아와서 갑자기 죽었는데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끊겨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슬픔이 극에 이를 때 흔히 창자가 끊어질 듯한 ‘애끊는’ 슬픔, ‘단장(斷腸)’이라는 단어가 유래하였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랑이 있지만, 맹자의 어머니나 신사임당을 들지 않더라도 어머니의 사랑이 단연 고귀한 것이다. 그 사랑은 노심초사, 맹목적인 희생, 아가페적 헌신이 핵심을 이룬다. 그래서 루디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이라는 사람이 ‘신이 어디에나 함께 할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드셨다’라고 말한 것 같다.

현전하는 고려가요인 ‘사모곡(思母曲)’을 보자.

‘호미도 날(刃)이지마는 낫같이 들 리도 없어라/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위 덩더둥셩/ 어머님같이 괴실 이 없어라/ 아소 님이시여/ 어머님같이 괴실 이 없어라/’ (*괴다: 사랑하다)

‘낫’에 비유한 어머니의 사랑이 깊고 높음을 새삼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와 더불어 야생의 세계에는 애틋한 ‘부성애(父性愛)’를 발휘하는 동물들이 있다.

멸종위기종인 가시고기 수컷은 암컷이 산란하고 떠난 곳에서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부지런히 지느러미를 움직여 지극정성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마침내 자신의 몸을 자식들이 뜯어먹도록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수서(水棲) 곤충인 물자라는 암컷이 수컷의 등 위에 알을 부착시키면 부화할 때까지 업고 다니며 어부바 사랑을 완성하는 개체이다.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서야 그동안 잊고 지냈던 ‘효’의 의미를 되새길 때, ‘반포보은(反哺報恩)’이라 하여 한갓 미물인 까마귀조차 자신의 부모를 봉양한다는데 말로만 떠들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송강 정철은 시조(時調) ‘훈민가’ 에서 이렇게 갈파하였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이번에 예천에 가면 필자의 고향 집 바로 윗동네 ‘효자면(孝子面)’을 한 번 방문할 예정이다. 그곳은 한겨울에 눈을 헤치며 연로하신 부모님께 수박을 구해드리고 실개천에서 잉어를 낚아왔던, 조선조 하늘이 내린 효자 도시복(都始復, 1817~1891)의 생가를 새로 조성한 곳이다. 한여름에 어머니를 위해 호랑이를 타고 홍시를 구해 왔다는 그의 효행은 명심보감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키우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모시기 어려운 시대. 효도는 구호로만 외칠 뿐, 어버이의 조건 없는 사랑에 1%의 보답도 못 해 드린 불효의 안타까움 속에 올해도 ‘어버이날’이 가고 있다.

권영해 시인·전 울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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