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아너는 경북 봉화군 동면리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어렸을 적에는 대단히 가난해서 등록금을 내야 하는 중학교도 갈 수 없는 처지였다”며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등록금을 몰래 내줬다. 등록금이 있는 줄도 모르고 중학교를 덕분에 다니다가 나중에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이 아너는 학기마다 시험을 쳐 전교 11등 이내에 들면 등록금을 면제해 주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매 학기 전교권에 들며 등록금을 면제받아 학업을 이었지만, 다시 대학교 등록금이라는 큰 벽이 다가왔다.
이 아너는 “당연히 대학교 등록금도 없었는데, 경성대학교에서 등록금을 대줄테니 와서 공부를 하라는 감사한 제안을 받고 경성대 약학대학에 입학했다”며 “등록금을 해결해도 생활비가 없어 매일 끼니를 때우기 어려워 굉장히 힘들었다. 그때 아는 형이 일하면서 버는 돈 2만 원을 전부 줬다. 덕분에 밥이나 된장, 배추라도 사서 먹으며 겨우 학업을 이어갔다”고 회상했다.
대학 졸업까지 무사히 마친 이 아너는 “생각을 해보니 ‘내 힘으로 약사가 된 게 아니고, 내 주위 사회와 국가와 시스템이 나를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러자 ‘이걸 갚아 나가야겠다’는 다짐이 바로 들었다”고 말했다.
약사가 된 이 아너는 대학 등록금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경성대에 1억원을 기부했다. 이후에도 갖은 기부를 이어오다 지난 2014년 울산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해 1억 원 기부를 약정하고 조기 완납했다.
특히 그는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 완납 이후에도 지속적인 기부를 이어오는 아너 중 한 명이다.
이 아너는 “아너소사이어티 기부는 작은 부분이다. 제 인생에서 ‘기부를 언제 시작했다’는 게 없다. 사회에 나오고 돈이 없었을 때도 경로당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20만~30만원이라도 드리고, 아이들 공부방이나 놀이방에서 도와달라고 하면 에어컨 등 시설 지원을 했다”며 “살면서 받았던 각종 빚들을 10배쯤 갚자는 다짐을 스스로 했고, 갚아나가면서 행복했다. 지금은 이미 그 수치를 훌쩍 넘은 것 같긴 하다”고 웃었다.
울산에도 아너소사이어티가 생겨나고, 기부에 뜻이 있는 이들이 모여 아너 모임도 만들면서 다양한 회원들을 만났던 경험을 이 아너는 기부를 하며 보람차고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이 아너는 “저도 그렇지만 울산에서 1억 원 이상 기부하는 대부분 후원자들이 돈이 정말 많은 경우는 잘 없다”며 “저야 어릴 적 은혜를 입어 기부로 이어지게 됐지만, 주위에는 사회를 돕고자 하는 개인의 마음으로 어렵게 어렵게 돈을 모아 기부하는 분들도 많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과 만나 서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아너 회원들을 확대했던 당시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돌아봤다.
다만 아직 울산을 포함한 대부분 사회에 기부 문화가 정착이 되지 않아 나눔문화 활성에 여전히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이 아너는 지적했다.
그는 “기부한 사람들은 떼돈을 벌어서 당연히 해줘도 되는 사람들이고, 나는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며 “마음을 다 해서 기부해도 아너회원이라고 알려지면 안 좋은 일이 더 많이 생기는 등 아직 울산에도 기부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는데, 이 점이 중요한 개선 과제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재경 아너는 “내가 조금 힘들어도 남을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모여 울산 나눔 문화가 여기까지 오고 울산 아너소사이어티도 모인 것 같다”며 “우리 모두가 사회에 살고 있고 알게 모르게 서로 돕고 도움을 받고 있는 만큼, 기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으로 모두가 작게나마 사회를 위해 손을 내민다면 보다 더 아름다운 울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혜윤기자 hy040430@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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