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문태준 ‘점점 커지는 기쁨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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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문태준 ‘점점 커지는 기쁨을 아느냐’
  • 경상일보
  • 승인 2024.09.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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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물러앉아 팔을 가을 하늘만큼 벌리니 아이가 뛰어온다
태초의 몰랑몰랑함이 웃으며 자꾸 떠오르듯 뛰어온다

너는 점점 커지는 기쁨을 아느냐

수초를 닮은 어린 물고기가 더 깊은 수심(水深)을 찾아가듯이
어린 새가 허공의 세계를 넓혀가듯이
코스모스가 오솔길을 저 멀리 따라가듯이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아이가 막 첫발을 떼는 순간을 그린 밀레의 <첫걸음>이란 그림이 생각나는 시다. 엄마는 아이의 뒤에 서서 조심히 어깨를 잡아주고 아빠는 어서 오라고 팔을 벌리고 있다. 아이도 아빠를 향해 팔을 뻗었다. 머뭇머뭇하다 마침내 아이가 한 발을 떼었다! 서로를 향해 벌린 팔처럼 부모의 기쁨과 아이의 득의양양함은 파문을 이루며 점점 커져 간다.

시인은 엄마를 향해 뛰어가는 아이를 “태초의 몰랑몰랑함”이라고 표현하였다. 무엇으로든 빚을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는 탄력과 가소성, 생기가 느껴진다. 걸음마를 하던 아이가 뛰기 시작할 때, 함께 산에 올랐을 때,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타게 됐을 때.

성장은 몸뿐 아니라 마음도 자라는 것이다. 어린 물고기가 더 깊은 곳으로 헤엄쳐 가보고 어린 새가 더 멀리까지 날아보듯, 그 세계가 더 크고 넓고 깊어지는 것이다.

아, 그리고 마침내 돌아오지 않을 때, 엄마를 향해 뛰어오던 아이가 엄마를 지나쳐 다른 세상, 더 넓은 세상으로 가버릴 때, 언젠간 그런 순간도 올 것이다. 그때야말로 정말 기뻐해야 할 때라는 것. 이제 아이는 자신의 세상을 살아가게 될 테니까. 그리고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누군가에게 가을 하늘처럼 팔을 벌릴 테니까.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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