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지역 학교들이 일제히 개학한 가운데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맞벌이 가정에서 볼멘 소리가 나온다. 각종 학부모 참여 활동이 줄줄이 예고된 탓인데, 출근 시간과 맞물리는 ‘녹색학부모회’의 경우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전문가들은 양육 환경 다변화에 발맞춰 기존 학부모 동원 활동 제도를 손 봐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3일 울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일선 학교는 급식 모니터링제를 비롯해 도서 도우미, 학교운영위원회, 학교폭력위원회 등 학부모 참여가 필수적인 활동을 매해 실시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는 어린이 등하굣길 교통 안전을 위해 녹색학부모회를 운영하고 있다. 녹색학부모회에 소속된 학부모들은 보통 오전 8시부터 9시 사이 학교 인근 지정된 장소에서 교통안전 지도를 해야 한다.
자발적 참여가 원칙이지만, 순번제 방식을 적용 중이어서 사실상 반강제에 가깝다는 게 학부모들의 설명이다.
대부분 학교에서 가정에 녹색학부모회 가입 신청서를 일괄 전달하고, 신청 결과에 따라 활동 순서를 정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상대적으로 양육 손길이 부족한 맞벌이 가정에서는 개학과 동시에 또 다른 숙제를 떠안은 분위기다.
학부모들은 1년에 한두 번 그치는 활동이고 행정·제도적으로 강제 사항이 아니라고 해도, 정서·심리적 부담감은 가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혹시 자녀가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이에 일부 워킹맘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녹색학부모회 활동 당일 연차를 쓴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대체자를 구하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실제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급 3만원 중구 ○○초 아침 교통 지도 대타 구해요’ ‘오전 8시 남구 ○○초 교통 봉사 인증사진 남겨주실 분’ 등 녹색학부모회 아르바이트 구인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선 초등학교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학부모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닌데, 교통안전 봉사는 학교 운영상 필수 사항이어서다.
무엇보다 교육부 차원에서 교내 활동 시 학부모 등 특정 인사를 포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오히려 학부모에게 적극적인 참여를 읍소해야 하는 처지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등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광표 울산과학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는 “상위 기관인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관련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타개할 방법이 없다”며 “과거와 비교해 학교 공간도 쾌적해졌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상황에 걸맞은 제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기조에서 외부 인사를 적극 활용하는 기조로 바뀌어야 한다”며 “전문 기관, 인근 대학과 연계하거나 참여 학부모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의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다예기자 ties@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