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34)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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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34) 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작자 미상
  • 경상일보
  • 승인 2024.09.0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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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고난도 이겨낼 사랑의 힘

바람도 쉬어 넘는,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도 다 쉬어 넘는 고봉장성령(高峰長城嶺) 고개
그 너머 님이 와 계시다 하면 나는 아니 쉬어 넘어리다 -<청구영언>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파초 잎에 빗방울 듣는, 해질녘의 뜰을 내다보며 늦여름 한 때의 망중한에 잠긴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다. 무더위에 지친 우리들에게 가을을 전해 주는 한줄기 소나기가 주루룩 쏟아진다.

낮 동안 그 무엇에 쫓기며 고달팠던 일상을 지워버리고 소나기 소리로 감미로운 영혼의 옷을 갈아입는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심각하고 무거운 과제일 수도 있지만 기다리던 소나기 한줄기로 하여금 삶이 가볍게 벅차올라 지친 영혼은 위로 받고 자신만의 억눌림 해소법이 되는 그런 시간이기도 하다.

서늘한 바람이 살에 감겨오고 느껴져 오면 오히려 가슴은 허전하기도 한 것이다. 이럴 땐 잊었던 벗이나 님이 그리운 시간이다. 더위에 지칠 때야 일상을 지탱하기도 힘든 그런 시간이었지만.

바람도 구름도 쉬어 넘는, 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라도 다 쉬어 넘는 고개를 아니 쉬고 넘겠다니 임에 대한 사랑이 어떤지를 짐작할 만 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 시조를 배우고 외며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누가 사랑은 무엇이라고 어떤 것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 사랑의 정의를 내린다면 수 없이 많을 것이니까. 사람마다 정의를 다르게 내릴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해동청 보라매도 다 쉬어 넘을 고봉장성령 고개를 그 너머 님이 와 계시다면 아니 쉬어 넘을 만치 사무치고 그리운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그 옛사람들이 읊어 놓은 것이다. 그것도 이름도 아니 밝히고 사랑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삶의 원동력은 사랑, 그것이 분명하다. 사랑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불꽃이 일어 가슴에서 꺼지지 않고 피어올라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사랑의 속성은 다 받지 않으면 하나도 받지 않은 거와 같고, 다 주지 않는 사랑, 또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고봉장성령 고개를 아니 쉬어 넘을 그런 사랑을 해볼 만하지 않은가.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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