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송파구의 한 주택에서 세 모녀가 ‘고맙고 죄송하다’는 편지와 밀린 공과금 70만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지 10여 년이 지났다.
지난 2014년 ‘송파 세 모녀법’이라 불리는 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이 개정됐다. 이어 사회보장급여법도 만들어졌지만, 가난으로 인한 죽음은 계속됐다.
최근에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며 은둔형 외톨이, 고독사 사례도 덩달아 상승 중이다. 특히 1인 가구라는 특성과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요즘의 사회 분위기로 인해 이들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쓸쓸히 세상을 등진다. 사망 사실 또한 세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려지게 된다.
이런 가운데 울산 남구에서 빚에 시달리며 자포자기했던 한 중년이 지자체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통해 사회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박희준(56·남구)씨는 지난 수년간 빚에 허덕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대리운전으로 하루 벌이를 충당했다.
지난 1월 건강이 더 나빠져 보건소에서 검사를 하니 당화혈색소가 15%를 기록하는 등 병원 진료를 권고받았다. 하지만 체납으로 인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박씨는 치료를 포기하고, 방세가 밀린 고시원 방에서 자포자기 상태로 지냈다.
이런 박씨의 사정을 알게 된 고시원 주인과 통장이 삼산동 행정복지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센터는 해당 사안을 검토한 뒤 사례 관리 대상으로 분류하고 담당자 배정과 함께 각종 행정 절차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간호사 출신이었던 황희재(29) 주무관은 수시로 박씨의 건강을 체크하는 한편 건강보험 결손 제도를 통해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고, 결식, 주민등록 말소, 건강보험료, 월세 체납 등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이윽고 병원 치료를 받게 된 박씨는 현재 당뇨, 만성 폐질환 치료를 받고 있으며 수급자로도 선정됐다.
박씨는 “긴급 지원을 받지 못했거나 수급자가 되지 못했다면 당뇨 합병증과 폐질환으로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다. ‘포기하지 마라. 도와주겠다’는 황 주무관의 행동, 말투, 눈빛에서 다시 희망을 가졌다”며 “황 주무관이 하라는데로 다 한 결과 목숨을 건졌다. 목숨 하나를 더 받았다는 마음으로 건강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는 공무원으로서 당연히 할 일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초췌한 몰골에 냄새나는 몸으로 찾아가도 나를 꼭 살려내고야 말겠다는 그 의지와 눈빛, 행동을 잊을 수 없다”며 “이런 태도와 마음은 배워서 나오는 게 아니고 천성이며 프로 정신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박씨의 사례 관리 담당자인 황 주무관은 간호사로 일하다 전직했다. 대학병원 호흡기 병동에서 근무하던 황 주무관은 담당 폐암 환자가 흉수가 차 항암치료도 미루는 상황에서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몰래 담배를 피다 사망한 것을 계기로 병증이 악화하기 전 금연을 했으면 살 수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에 간호직 공무원으로 전직해 지난 2022년 임용됐다.
황 주무관은 “저희에게 오기까지 과정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분들(사례 관리자)을 보면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든다. 저도 공무원 공부 준비 중에 세상과 잠깐 단절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 외로움과 불안함을 아직도 기억한다”며 “그래서 그곳에서 나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잘 안다. 그리고 그런 시기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힘들면 혼자 버티지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사연을 전해 들은 분은 동으로 신고를,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행정복지센터로 찾아오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신동섭기자 shingi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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