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초대석]“암각화, 바위에 새긴 낙서 아닌 삶의 메시지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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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초대석]“암각화, 바위에 새긴 낙서 아닌 삶의 메시지 담겨”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4.12.03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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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보 ‘붉은도끼’ 연재 마친 김태환 소설가

김태환(사진) 작가는 지난 5월부터 6개월에 걸쳐 본보에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가 있는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구천 일대를 배경으로 한 자신의 신작 소설 ‘붉은도끼’를 연재했다. 긴 시간 소설 연재를 마친 그는 “홀가분하다”고 첫 소감을 말했다. 매일 이어진 연재에 대한 부담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무엇보다 김 작가의 실감 넘치는 소설에 지인들의 질문 공세도 부담이 됐다. 김 작가는 “소설 ‘붉은도끼’를 연재하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공통적으로 실화인지, 픽션인지 물어본다”며 “실감 나게 썼을 뿐 당연히 실화가 아닌 픽션이다”고 연재를 마친 뒤 답을 내놓았다.

반구천 일대의 암각화가 새겨진 시기는 대략 수천 년 전이다. 수렵 채집 시기에 새겨졌다고 추정되는 반구대 암각화는 그림이어서 조금은 의미를 알아볼 수 있는데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의 기호 문양은 지금 수준으로는 해독할 수 없는 상태다. 고대 암각화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고대 문자에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인 소설가가 이야기를 쓴다는 게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대인들이 바위에 장난으로 낙서를 해놓은 것이 아닌 이상 무언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김 작가는 “어느 특정한 분야인지는 몰라도 암각화 문양이 의미하는 것이 그 당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라는 것은 분명하기에 여기서 명제 하나가 분명히 떠올랐다”며 “바로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볼 때 고대 문자를 연구하는 사람도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라는 생각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의 말처럼 사람 사는 이야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소설가이다. ‘붉은도끼’에 나오는 이야기가 검증될 수 있는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는 학자도 없을 것이다.

김 작가는 “고대 문자 해석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소설가가 상상하는 이야기들이 문자 해독에 걸림돌이 되는지도 알 수 없다”며 “하지만 한 사람의 가정이 아닌 많은 사람들의 상상이 모이면 정답을 찾아가는 일이 좀 더 수월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실제 김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반구천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동마을에는 홍옥석 광산에서 원석을 지게로 져 날랐다는 노인도 만났다. 주변을 수소문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것은 암각화가 학계에 보고된 1970년부터 숨이 멈춰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주변에 근접해 있는 마을 사람들과 생활상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김 작가는 생각한다. 1990년대 초 김 작가 역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에 놀러 가서 닭도 삶아 먹고 개울 바닥에 새까맣게 붙어 사는 ‘빠꼬마시’라고 부르는 아주 작은 물고기를 모기장을 이용해 잡아먹은 적도 있다. 당시에는 대곡천 일대가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멋진 여름 휴양지였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그러던 것이 문화재로 각인되면서 무조건 보호하고 지켜야만 하는 존재로 가까이할 수 없게 됐다.

1970년에 발견되면서 김 작가가 제일 먼저 해야 했던 것은 암각화와 연계된 주변인들의 이야기들을 채록해 놓는 것이었다. 문자가 수천 수만 년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야기 역시 제법 오랜 시간이 흘러가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 원형이 변형되기는 해도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게 될 확률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김태환 작가는 “암각화가 학계에 보고된 지 54년이 흘렀고, 채록돼야 할 이야기도 거의 모두 소멸했다고 봐야 하기에 안타깝다”며 “내가 채집해 놓은 이야기 중에 소설에 다 담지 못한 것이 꽤 많다. 아직도 써야 할 이야기들이 많은데 잠시 숨을 좀 고르고 봐야겠다”고 다음 이야기에 대한 여운을 남겼다. 전상헌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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