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울산 곳곳에서 공공시설 조성 사업이 주민 반발로 좌초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부터 가족, 노년층 등 다양한 계층의 여가·복지 수요를 반영한 시설임에도, 인근 주민들은 소음과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거에는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쓰레기소각장, 장사시설 등 혐오시설에 대한 님비(NIMBY) 현상이 주로 나타났다면, 최근에는 일상 속 불편을 야기하는 시설에도 거부 반응이 확산되는 추세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소음”
울산 울주군은 올해 초부터 범서읍 무거초등학교 인근 꿈마루어린이공원에 물놀이장 조성을 재추진하고 있다. 인근 아파트 단지 7곳이 반경 400m 안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난 곳이다.
그러나 조성 계획이 알려지자 ‘아이들 웃음소리가 소음’이라는 주민 민원이 수백 건 접수돼 사업이 일시 중단됐다. 소음과 학습권 침해, 주민 설명회 홍보 부족 등이 주요 이유였다. 몇 년 전에도 같은 문제로 사업이 한 차례 무산된 바 있었다.
군은 소음 저감 대책으로 파고라(그늘막)와 임시 방음벽 설치를 검토하고 주민설명회도 추가로 열겠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반대 주민들은 “야간 근무조는 오전에 잠을 자야 한다. 하루 종일 시끄러울 수 있다”며 뜻을 꺾지 않고 있다.
반대 목소리로 사업이 중단되자 찬성 측 주민들은 “도심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빠른 조성을 촉구하고 있다.
울주군이 온양읍 옹기마을 철도 유휴부지에 조성하려고 하는 울주파크골프장도 지역 사회 갈등의 중심에 섰다.
파크골프협회 회원과 파크골프장 이용자들은 “울산에는 36홀 이상 공인 구장이 없어 전국대회 개최가 불가능하다”며 “파크골프장이 지어지면 교육장, 골프샵 등 부대시설이 마련되고 이용자가 늘어 지역 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파크골프장 조성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마을 주민들은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한 시설이 아닌, 특정 세대를 위한 시설이 마을 안에 들어오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주민 동의 없는 일방적 추진, 농약 사용 및 소음, 흙먼지, 교통 혼잡, 사고 위험, 마을 단절 등이 주된 반대 이유다.
군은 “파크골프장 운영 시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소음 저감 조경 등 대책을 마련했다”며 7월 착공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착공 시점에서 주민과의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공공성과 주민 불편의 충돌
울주군 어린이물놀이장 조성 등은 ‘님비현상’과 ‘비선호시설’ 논쟁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자체는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노인을 공경하는 복지행정’을 목표로 다양한 공공시설을 조성 중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주민 호응이 높다”는 행정 당국의 발표와 달리, 시설 신설 시마다 반복되는 민원과 갈등이 뚜렷하다.
전문가들은 공공시설 조성 시 긍정적 효과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인근 주민의 생활 불편과 삶의 질 저하에 대한 실질적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울산을 포함한 상당수 지자체는 관광이나 복지정책 성과를 평가할 때 ‘주민 불편 지수’나 ‘갈등 관리 지표’를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민 동의 없는 일방적 추진이 반복된다면, 공공시설이 오히려 지역 갈등의 불씨로 전락할 수 있다.
도수관 울산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설이 주변에 설치될 때, 이를 원치 않는 인근 주민 사이에서 비선호시설로 인식되면 님비현상이 나타난다”며 “공공시설을 원하는 시민들은 금전적 대가 없이 사회적 혜택을 받기 위해 찬성하지만, 그로 인한 생활 피해는 주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구조다. 주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신동섭기자 shingi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