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암각화와 명문을 아우르는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740호로 정식 지정됐다. 2010년 잠정목록 등록 이후 15년에 걸친 긴 여정의 결실이다. 시민들의 오랜 염원, 학계의 집요한 연구, 문화재청과 울산시의 공조가 만들어낸 이번 등재는 단순한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산업도시 울산이 인류 보편의 가치를 품은 문화도시로 도약하는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깊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시대 인류의 삶과 정신세계를 생생하게 전하는 유산이다. 무리지어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 새끼를 업은 고래의 형상 등은 바위를 캔버스로 삼은 창의적 걸작으로 평가된다. 단순한 유적을 넘어, 선사 인류가 남긴 해양활동의 기록이자, 사냥 공동체의 삶과 자연과의 교감을 압축한 인문학적 보고다.
이제 과제는 명확하다. 등재가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인식 아래, ‘보존’과 ‘활용’이라는 두 축을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한다. 울산시는 탐방로 조성, 세계암각화센터 건립, 경관 정비 등 종합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국비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반가운 움직임이지만,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단순한 볼거리 중심의 관광개발을 넘어, 암각화가 지닌 역사적 의미를 모두가 함께 느끼고 해석할 수 있도록 경험의 폭을 넓혀야 한다.
암각화는 현장성이 강한 유적이지만, 그 가치를 확장하는 데 디지털 기술은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이 강조하듯, 메타버스기반 체험콘텐츠, 교육용 다큐멘터리,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을 통한 재해석은 암각화의 상징성을 공유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문화유산은 단지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 세대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K-콘텐츠’로서의 확장 가능성은 울산이 문화도시로 거듭나는 데 있어 중요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보존만 외쳐서는 시민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기 어렵고, 활용에만 집중하면 유산의 진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울산이 선택해야 할 길은 창의성과 책임을 겸비한 문화도시 전략이다. 반구천 암각화가 인류가 남긴 창조의 흔적이라면, 이제 무엇을 더하고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과제다.
정부 역시 이번 등재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울산시와 긴밀히 협력해 국가차원의 종합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반구천 암각화가 단순한 지역자산이 아닌, 국가의 품격을 상징하는 유산으로, 다음 세대에 전할 집단기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진정한 보존과 창의적 활용이 병행돼야 한다. 반구천 암각화가 ‘과거의 유산’을 넘어 ‘미래의 자산’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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