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울산 울주군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유산 등재는 단지 행정적 등록이 아니라, 수천년 전 선사시대인들의 삶과 사유가 새겨진 이 공간이 전 인류의 자산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울산이 ‘산업수도’라는 정체성을 넘어, 문화유산을 품은 ‘문화수도’로서의 새로운 미래를 열고 있다는 상징적인 전환점이기도 하다. 국가유산청과 지자체, 학계, 전문가들의 꾸준한 노력도 있었지만, 이 성취의 바탕에는 시민 모두의 관심과 협력이 있었다.
반구천을 따라 펼쳐진 절벽 위에는 수천 년 전 사람들이 남긴 생활과 사유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다. 고래, 사슴, 거북 같은 동물들, 작살과 그물, 인물상, 문자, 추상 기호들이 마치 선사시대의 이야기처럼 암벽 위에 그려져 있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고래 사냥 장면이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천전리 암각화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그림과 문자가 하나의 화면 위에 중첩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벽화나 낙서가 아니라,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온 이들의 세계관과 예술이 응축된 독특한 기록이며,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유형의 유산이다.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지난 2010년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린 이후, 수몰 위험, 수위 조정 문제, 보존과 개발 간의 갈등 등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울산은 끝내 유산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역사회, 전문가, 행정기관, 시민사회가 함께 해법을 모색했고, 이러한 끈질긴 연대와 실천이 오늘의 결실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단지 등록의 의미를 넘어, 그 유산을 어떻게 잘 보존하고 널리 알릴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유산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방문객의 증가 또한 예상된다. 관광산업과 상업적 관심이 함께 확대될수록, 반대로 문화재 훼손이나 환경 문제의 우려도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유산이 지닌 본래의 가치를 지키며, 누구나 그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동선 설계, 출입 관리, 해설 체계, 언어 접근성 등 모든 요소가 함께 정비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의 참여와 시민의식은 핵심이다. 특히,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유산을 함께 지키는 실천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울산광역시자원봉사센터는 향후 반구천 의 암각화에 대한 지속 가능한 보존과 교육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기여할 수 있다. 첫째, 현장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자연 훼손이나 침수 위험을 모니터링하는 ‘유산지킴이’ 자원봉사단을 조직할 수 있다. 둘째, 시민 해설사를 양성하여, 청소년·시니어·다문화 주민들이 해설과 안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셋째, 청년 중심의 미디어 자원봉사단을 통해 카드뉴스, 영상, SNS 캠페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유산을 쉽고 생동감 있게 소개할 수 있다. 넷째, 지역 학교 및 기관과 연계한 문화유산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의식과 참여를 확산할 수 있다.
자원봉사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시민이 유산을 지키는 하나의 생활 방식이 될 수 있다. 문화유산은 제도만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실천과 책임, 그리고 함께 나누는 참여가 더해질 때에야 비로소 다음 세대로 온전히 전해질 수 있다.
반구천의 암각화는 과거의 기록이지만, 오늘 우리에게 미래를 묻는 유산이기도 하다. 울산광역시자원봉사센터는 앞으로도 이 유산이 울산 시민의 손으로 지켜지고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실천하고 협력해 나갈 것이다. 우리 시 자원봉사자의 고운 손길 손길이 모여, 반구천의 암각화가 1000년 뒤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울산의 자긍심으로 남기를 소망한다.
김종길 울산광역시자원봉사센터 이사장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