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쟁이들]“찾는 이가 있는 한, 붓 만드는 작업 끝내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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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쟁이들]“찾는 이가 있는 한, 붓 만드는 작업 끝내지 않을겁니다”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0.08.27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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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붓 따라 세상 따라 63년 외길 인생
­울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 모필장 김종춘
▲ 흰 염소털로 만든 양모필.

김형찬·안종선에 사사 받고
붓 만들기 평생의 업으로 삼아
성남동에 죽림칠현 필방 열고
20여년간 붓 작업에만 매진
2006년엔 죽림산방으로 개명

대나무 채취부터 제작까지
직접 붓대 만들어 사용
가장 중요한 건 동물의 털
좋은 재료로 붓 만들고 싶어
온 세상 다니며 발품 팔기도


‘울산의 쟁이들’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담담하게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울산을 기반으로 오랜 기간 전통문화 분야에 몰두하며 최고의 열정과 기량을 보여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생애와 기예를 소개한다.

울산시 중구 성남동의 동헌 근처에는 울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 모필장 김종춘 장인의 필방 ‘죽림산방’이 있다. 1942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김종춘 장인은 초등학교 시절 6·25 전쟁을 겪고 6학년이 끝날 무렵 경남 밀양으로 이사를 갔다. 밀양에서 17세에 우연히 동네 친구를 따라 붓으로 유명한 김형찬 옹을 만나게 되면서 필장(筆匠) 인생에 발을 디뎠다. 이후 3년간 스승의 집에서 기거하며 붓 기술을 배우고, 스무 살 무렵 스승에게 호비칼·치게(빗)·치죽칼 이렇게 세 가지 도구를 받고 독립하였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는 이 도구들은 붓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공구로,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든 밥은 굶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 울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 모필장 김종춘.


독립한 이후로 장인은 붓을 만들고 붓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1961년 6월에는 광주로 갔는데 당시 광주 백운동에는 ‘진다리붓’으로 유명한 안종선 장인이 있었다. 김종춘 장인은 안종선 옹의 집에 세 달을 머물며 그에게 붓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러다가 1964년에는 군대를 갔고 거기서 베트남전에 지원하여 베트남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제대 후에는 부산과 대구에 머물며 붓을 만들었다. 1969년 대구에서 결혼한 후 서울로 올라가 10년을 살다 1979년 다시 대구로 내려왔다. 그리고 1995년 아들 김중엽 서예가와 딸 김근애 전수자가 울산에 정착한 것을 계기로 가족 모두 울산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25년이 넘도록 성남동 골목 안에서 붓 작업을 해왔다. 처음에는 ‘죽림칠현’이라는 이름으로 필방을 열었다가, 2006년에 ‘죽림산방’으로 개명하였다. 붓의 골격이 되는 대나무는 중요한 재료 중 하나기에 이름에 ‘죽림(竹林)’만은 고수하였다.

▲ ‘죽림산방’의

다양한 붓들.


실제로 김종춘 장인은 대나무로 붓대를 만든다. 대나무 채취부터 제작까지 모두 장인의 손길을 거쳐 이루어진다. 장인의 붓대는 다 같은 대나무라고 해도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양이 제각각이다. 대나무 하면 떠올리는 시원하게 쭉쭉 뻗은 나무대가 아니라, 비뚤고 휘어진, 흔히 말하는 몹쓸 대나무가 오히려 붓대로 쓰기에 딱 좋다고 한다. 구부러진 것은 불에 그을려 달래면서 살살 펴주고, 휘어진 것은 마디가 촘촘하니 모양이 예뻐 보기에 좋다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제 각각 쓸모가 있다더니 붓대에도 그 말이 딱이다.

▲ 다양한 형태의

대나무 붓대들.



“대밭에 오면 같은 오죽이라도 똑같지 않거든요. 새카매도 마디가 요래 좀 기형으로 생긴 대나무가 있어요. 잘 생긴거 보다는 그런 게 마디가 총총 배기가 있어 가지고 더 좋은 거지요. 그런 대나무를 주로 많이 캐고, 쭉쭉 뻗은 잘생긴 거는 패지를 않아요. 마디가 널쓱널쓱한 걸로 붓을 해놓으면 태가 안 나고, 마디가 총총 배긴 거가 재미있고…”



붓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좋은 재료, 곧 동물의 털이다. 족제비·노루·청설모·말·쥐·담비·염소 등 온갖 종류의 털들로 다 붓을 만들 수 있다. 김종춘 장인은 그동안 노루 겨드랑이 털로 만드는 장액필(獐腋筆), 흰 염소털로 만드는 양모필(羊毛筆), 야생마의 꼬리털로 만드는 산마필(山馬筆)을 만들어 왔다. 거기에 한 번도 자른 적이 없는 갓난아이의 배냇머리를 모아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만드는 태모필(胎母筆)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보기엔 그저 바람에 훅 날리는 가늘고 가느다란 한낱 털일 뿐인데, 김종춘 장인의 눈에는 그 모두가 훌륭한 붓의 재료가 된다. 각각의 털들이 가진 성질들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 쓸모에 딱 맞는 붓을 만드는 것, 그것이 장인에게 세상의 모든 털들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 스승에게 받은 치죽칼·호비칼·치게(빗).

전통붓은 전통의 재료와 방법을 그대로 살려 만든다. 과거의 기술을 오늘에 재현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예전 그대로의 재료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예전에는 남해안이나 섬 지역에서 쉽게 흰 염소털을 구했고, 북쪽 지방에서 족제비털과 노루털을 흔히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삶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이 재료들을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다. 산마의 꼬리털 역시 기온차가 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내몽고의 털들을 가져다 쓴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간신히 비슷한 재료라도 구할 수 있다. 장인은 붓 재료가 되는 좋은 털을 찾아 이제는 온 세상을 다니며 발품을 팔고 있다. 누가 뭐래도 좋은 재료가 아니면 붓을 만들기 싫으니, 절대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어서.



“재료를 제대로 좋은 걸 몬 구입하고 일을 못할 적에 힘들지. 지금도 그래요. 내가 아무 재료나 가지면 하겠는데 내가 만들고 싶은 재료가 없으니까. 아끼는 재료도 있어요. 지금 그거가 고갈이 돼뿌면 어디 가서 맨들 수도 없고 해가 아끼고 있는데. 좋은 재료는 아끼고 그거 한 재료는 쓰지를 않으니까 거의 뭐 노는 한이 있더라도 헐은 재료는 손을 안 대고 있어요.”



군대ㆍ베트남전ㆍ철사 공장 2개월, 그 기간만 빼고 17세 때 붓 만드는 길에 입문한 이래 60여 년을 오로지 붓만 만들며 살아왔다. 한 때는 부지런히 만들면 그만한 게 없어서, 이제는 배운 게 이것밖에 없어 다른 걸 할 수가 없어서, 그 이유가 무엇이건 붓을 만드는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아무리 붓 쓰는 이가 줄었다 해도 여전히 쓰는 사람은 쓴다. 그리고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 장인에게 붓을 주문하고 그는 그들을 위해 붓을 만든다. 붓을 찾는 이가 있는 한 그의 붓 만드는 작업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글= 노경희 전문기자·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사진= 조철수 작가 제공

표제= 김중엽 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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