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물러나는 울산의 간이역들]울산 발전의 기틀…원도심 새로운 볼거리 창출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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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물러나는 울산의 간이역들]울산 발전의 기틀…원도심 새로운 볼거리 창출 이끌어
  • 석현주 기자
  • 승인 2020.09.02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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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끝)옛 울산역·병영역
▲ 1921년 10월25일 울산에서 처음으로 기차가 운행됐다. 울산 최초의 기차역은 중구 성남동 일원에 만들어진 ‘울산역’이다. 이후 1935년 학성동으로 이전됐다. 사진은 학성동 옛 울산역 모습. 울산시 제공

울산 땅에 처음으로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1921년 10월25일로 일본에 강제 병합된지 11년째 되는 해였다. 울산 최초의 기차역은 중구 성남동 일원에 만들어졌다.

당시 기차는 울산에서 경주를 거쳐 대구까지 운행됐으며, 노선의 이름은 ‘경동선(慶東線)’이다. 당시 개통된 철도노선은 조선총독부가 운영하는 국철이 아니라 민간회사인 조선중앙철도가 운영하는 사철(私鐵)이었다.

울산역은 1935년 학성동으로, 그리고 1992년 남구 삼산동으로 옮겨졌고, 현재 역명은 ‘태화강역’이다. 역사속 자료와 옛 추억속으로 남겨진 울산역과 인근의 병영역의 설립과정과 그에 깃은 울산의 기억을 되짚어 본다.

옛 울산역
울산시가지 확장시키는 기폭제 역할로
1980년대까지 중심상업지역으로 활약
100년 전 취수정 찾아 문화공간 조성

옛 병영역
1990년까지 남외동 삼일아파트 자리에
교통요지서 울산역 이전으로 역사 폐쇄
철교 남아 옛 동해남부선 흔적 볼 수도


◇현재 성남동 형성 기틀 마련한 ‘옛 울산역’

1921년 당시의 울산역은 현 중구 성남동 옛 울산소방서 일대에 있었다. 부지 남쪽 경계는 ‘젊음의 1거리’로 옛 천도극장 옆 작은 골목길이다. 동쪽은 ‘시계탑거리’, 북쪽은 ‘먹자거리’ 까지이고, 서쪽은 학성로와 ‘젊음의 거리’가 만나는 지점까지가 된다. 여기에 철도역이 들어선 것은 조선시대에 형성된 울산 시가지를 피하면서 역 신설에 필요한 충분한 면적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주택이 밀집된 곳을 피하면서 태화강을 건너지 않고, 군청이나 시장 등과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후 1935년에 역이 다른 곳으로 옮겨간 후에는 현재의 성남동이 형성되는 기틀을 제공했다.

▲ 1920년대 옛 울산역이 자리했던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원도심 시계탑 모형열차. 경상일보 자료사진

성남동 경편철도가 문을 닫고, 태화강에 철교가 생겨나서 남창~해운대~동래~부산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철도시대가 열린 것은 1935년 12월16일이다.

실제로 학성동에 철도역이 신설돼 이전하면서 남겨진 성남동 옛 철도부지는 나중에 세무서, 공회당, 소방조, 전신전화국, 영화관 등 수많은 도시시설 부지로 재활용되는 등 1980년대 후반까지 울산 중심상업지역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학성동에 역 부지가 마련된 것 역시 부산에서 울산까지 가장 효율적인 철도노선을 선택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 울산 중구 성남동 젊음의거리 일원에 방치돼 왔던 구 울산역 급수탑 수원지가 새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됐다.

전체 구간에서 교량과 터널을 최소화하면서 태화강을 건너고, 동쪽으로 꺾이는 곡선반경까지 고려한다면 학성동이 최적지였다. 이처럼, 두 번의 철도역 입지는 기존 울산시가지를 남쪽으로, 그리고 동쪽으로 확장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그리고 이렇게 갖춰진 철도망은 뒷날 울산이 일본인 사업가가 추진한 공업도시 및 유울연락기지 사업 대상지로 선택되는 한 요인이 됐고, 결국은 1962년의 울산공업센터 기공으로 이어진다.

울산공업센터 기공 30년 후 1992년 8월에 학성동에서 남구 삼산동으로 울산역을 이전했다.
 

▲ 취수정 내부 모습. 경상일보 자료사진

◇옛 울산역 취수정, 역사문화공간으로 재탄생

중구 성남동 젊음의거리 일원에서 옛 울산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옛 울산역이 활발하게 운행될 당시 철길을 다니던 증기기관차들은 기차역 도착 후 인근에 설치된 급수탑으로부터 물을 투입했는데, 옛 울산역이 위치하던 성남동 젊음의거리 일원에서 급수탑과 관련된 취수정(우물)의 존재를 확인했다.

중구에 따르면 수십년 전 구획정리사업으로 바닥에 묻히면서 지표면 아래 취수정은 약 100년 전 사용하던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중구는 취수정을 비롯해 방치되다시피 한 골목 주변에 대한 정비작업에 나섰다.

오래 전 급수탑이 헐려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과거 울산역과 비슷한 시기 조성된 국내 급수탑을 참고해 취수정 옆 민간 건물 벽면에 부조 형태로 높이 약 6m의 급수탑을 재현했다. 또 썰렁했던 건물 외벽에는 100년 전 당시 울산역을 실제로 오가던 증기기관차 모델을 참고해 트릭아트 형태의 벽화를 조성했다.

중구 관계자는 “잊혀지고 방치됐던 옛 기차역의 흔적에 도시재생을 입혀 버려지다시피 한 외진 골목이 새로운 역사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원도심을 찾는 시민과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이자, 지역의 역사자원으로 가꿔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남외동 삼일아파트 자리는 ‘옛 병영역’

병영역은 울산역이 성남동에서 학성동으로, 삼산동으로 옮겨지는 사이 울산역과 함께 지역 철도교통 발전 부흥에 큰 힘을 보탰던 간이역 중 하나다.

울산 중구 남외동 삼일아파트 자리는 1990년대 초반까지 병영역이 있었다. 지금 모습으론 역이 있었던 자리라고 생각하기 힘들정도로 아파트와 상가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병영역은 1922년에 간이역으로 시작했다. 당시 신문기사에 의하면 1925년 병영역이 보통역과 다름없는 업무를 보고 있음에도 역사가 마련되지 않아 지역 주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후 1936년 병영역사가 신축됐다.

이후 1953년 보통역으로 승격됐으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 동해남부선의 노선이 변화되면서 학성동의 울산역이 삼산동으로 옮겨가자 병영역은 폐쇄됐다.

지금 남외동 울산순교성지성당 앞 인도교에는 예전 철교 교각이 남아있어 옛 동해남부선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또 현재 병영동과 진장동을 잇는 다리는 자동차가 아닌 기차가 다니던 ‘구 진장철교’였다. 구 동해남부선의 또 다른 흔적이다. 동천강 백사장에서 씨름을 즐기고, 진장철교에 그네를 매달아 그네놀이를 즐겼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석현주기자 hyunju021@ksilbo.co.kr

참고=<울산의 기억 울산의 미래> <울산의 성곽>, 울산디지털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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