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중호우 때마다 물에 잠기는 반구대암각화의 침수 시기를 단축하기 위해 제시됐던 사연댐 사이펀 설치안이 제안 1년 만에 사실상 백지화됐다. 경북 청도군 운문댐 용수를 받아오는 대신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는 낙동강통합물관리 방안이 최종 준공되기 전까지 반구대암각화의 장기 침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11일 울산시와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환경부의 부정적 입장으로 사연댐 사이펀 설치가 사실상 무산됐다.
환경부는 이미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에 따라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사이펀 설치는 여수로 안전성과 예산 중복 투자 문제 등이 우려된다며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런 기조는 지난 6월24일 운문댐 물을 받는 대신 수문을 달아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낙동강 유역 통합물관리방안 마련 연구’가 최종 심의·의결되자 더욱 굳어졌다. 사연댐 사이펀 설치를 사실상 백지화한 셈이다.
울산시 역시 통합물관리방안이 확정된 만큼 사이펀이 아닌 수문 설치를 통해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2027년으로 계획된 낙동강 통합물관리방안의 완성 여부가 사이펀 설치 제안 1년째인 11일 현재 미지수라는 점이다. 당초 지난달 예정이었던 국무총리 주재 5개 지자체 협정 체결은 지연 중이며, 상류지역 주민 수용성 문제 해결도 진전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반구대암각화 침수도 불가피한 셈이다.
하루라도 침수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8월11일 송철호 시장이 사이펀 설치를 제안했지만, 정작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해야 하는 문화재청까지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사이펀 설치를 위해서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심의 자료로 사이펀이 반구대암각화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해야 하는 만큼 이에 대한 조사에 예산과 시간이 필요해 사실상 사이펀 설치를 접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이 반구대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에 급급할 뿐 정작 반구대암각화의 보존에는 무관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문화재청은 반구대암각화의 침수를 막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인 생태제방안은 세계유산 등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난색을 표한 전례도 있다.
울산시와 환경부, 문화재청 등 유관기관이 모두 사이펀 설치를 포기함에 따라 수문 설치가 지연될 경우 반구대암각화 훼손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정책적인 선택을 할 때 최고의 선택지가 없다면 여러 가지 고려를 통해 차선을 선택한다”며 “사이펀을 설치할 경우 반구대암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수문 설치라는 대안이 제시된 만큼 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한편 송철호 시장은 지난해 8월11일 사연댐을 관리하는 박재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과 함께 현장을 방문해 사연댐에 사이펀을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송 시장은 반구대암각화가 매년 집중호우 때마다 길게는 수개월씩 침수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이펀 설치를 제안했다. 반구대암각화 침수 기간을 하루라도 단축하자는 취지였다.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