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스핀오프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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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스핀오프의 역설
  • 경상일보
  • 승인 2022.06.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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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희 미국변호사

우리나라에서 스핀오프(spin-off)라는 영어단어는 마블 히어로즈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처럼 시리즈 제작이 이뤄진 영화 속 조연들의 사연을 별개의 이야기로 떼어내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중심 되는 줄거리에서 곁가지를 떼어낸다’는 의미 그대로여서 조금의 설명만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편리한 단어인데, 이 단어가 요긴하게 사용되는 곳이 한군데 더 있다. 기업 활동 가운데 우리가 보통 분사(分社)라고 부르는 기업분할을 설명할 때 쓰는 스핀오프가 그것이다. 오늘은 이 말을 빌어 최근 미국 기업들에게서 발견되는 주목할 만한 동향을 하나 설명하고자 한다.

미국시간으로 지난 6월21일, 글로벌 식품기업인 켈로그는 상장기업인 켈로그 컴퍼니를 3개의 독립기업으로 분할하겠다는 계획을 이사회 결의사항으로 발표했다. 매출액 기준 세계 28위의 켈로그는 1894년에 설립돼 팬데믹 영향에도 연 매출이 2021년말 기준 141억 달러로 좋은 실적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현상유지 대신 주력사업과 신규사업을 기준으로 기업분할이라는 변화를 단행하겠다는 것이 발표의 주요 내용이다. 공식 명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매출의 80%를 담당하는 스낵사업부문, 우리에게도 친숙한 아침식사용 시리얼 및 냉동식품부문, 그리고 식물성 대체육 사업(plant-based business)부문들을 각 회사로 독립시켜 상장하겠다는 게 켈로그측의 설명이다. 금번 계획의 취지는 기업구조를 단순화하고, 주력부문인 스낵사업에 집중하며, 신규사업의 잠재력을 끌어올려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관련시장 확대 및 이를 위한 자본소요, 그리고 필요 시 매각까지도 대비한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가 주목되는 것은 보수적 운영이 아닌 기업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단행할 시기로 판단한 기업이 비단 켈로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식품시장에서 경쟁하는 크래프트 푸드(Kraft Foods, 현 크래프트 하인즈)의 경우 이미 지난 2012년 스낵업과 기타 식품업을 영위하는 두 회사로 분할된 바 있으며, GE는 지난해 11월 자사를 헬스케어, 에너지, 항공업을 영위하는 3개 회사로 분할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업법무 실무자로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분할의 방법이다. 관련 계획을 공표한 기업들은 대부분 상장기업들로 관련 계획이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추진될 것임을 명시했는데, 분할 대상기업과 주주들이 연방소득세법상 면세되는 구조로 분사를 추진하겠다(tax-free spin-off)는 말이 그것이다. 기업분할을 뜻하는 영어표현은 스핀오프 외에도 break up, carve out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언론보도 등에서는 같은 뜻으로 혼용되나 법적으로는 사업을 나누어 갖는 신설법인(new standalone entity)의 지분을 누구에게 어떻게 귀속시킬 것인지를 기준으로 구분돼 사용된다. 앞서 설명한 면세 조건부 스핀오프는 미국법상 분할 대상기업의 주주들에게 보유지분에 비례해 신설법인의 지분이 분배되는 형태, 즉 우리 회사법상 인적분할에 유사한 형태로 이뤄질 때 가능한 방법이다.

영화에서 스핀오프의 제작이 관객들에게 주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스핀오프는 자신만의 서사가 부여되기 어려운 조연들에게 캐릭터의 입체성을 부여해 줌으로써 영화 속 세계관(유니버스)을 보다 구체화하고 등장인물들이 단순한 선악의 진영 어딘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람들처럼 갈등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인물이라는 리얼리티를 부여해준다. 그 결과 관객들은 더 풍부해진 이야기 속에서 더 쉽게 등장인물들에게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기업현실에서 스핀오프가 회사와 주주들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일까. 켈로그의 CEO 스티브 캐힐레인의 발표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nimble’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현재의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자사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민첩해야(nimble) 하는데, 상이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같은 조직에서 운영하는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이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나누고 떼어낸다는 의미의 스핀오프가 기업가치를 키운다는 역설이 인상적이지 않은가. 켈로그의 이번 결정이 계속 인용되는 스핀오프의 성공사례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이준희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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