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문답]수려한 계곡 풍경 푹 빠져 걷다보면 부처 걸어나올 것 같은 암자들 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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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문답]수려한 계곡 풍경 푹 빠져 걷다보면 부처 걸어나올 것 같은 암자들 반겨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2.06.30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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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산이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길을 소개하는 산행기 <산중문답>을 시작한다. 필자는 본보에 <반구저기>를 연재하고 있는 송철호 박사다. 송 박사는 십수년에 걸쳐 산악회 회장으로서 전국의 수많은 산을 다녔다. 고전인문학자이면서 향토사연구가인 그의 산행길을 지면으로 동행하는 재미가 쏠쏠하리라 기대한다.



1. 누가 나에게 물었다. “왜 산에 가시는지요?” 그 질문을 받고 나는 내게 물었다. “너는 왜 산에 가는가?” 그랬다. 나는 20년 넘는 세월 동안 산악회 회장을 했다. 그동안 다닌 산만 해도 500여 곳이 넘는다. 한동안 빠짐없이 매주 산행을 다녔던 적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저 물음에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저 머리에 온갖 생각들이 맴돌 뿐이었다.

오늘 오후에 잠시 이백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을 읽었다. 원체 유명한 시라서 진작에 여러 번 본 것이지만, 오늘 읽으니 문득 저 답이 생각났다. ‘나에게 묻노니, 너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問余何事棲碧山)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은 저절로 한가롭네(笑而不答心自閑)’. 아! 내가 산을 찾는 이유는 마음이 절로 한가로워지기 때문이구나.

2. 울산 근교에 있는 산 중에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풍경이 빼어나서 소금강이라고 불린 곳, 천성산이다. 천성산에는 두 개의 높은 봉이 있는데, 예전에는 922.2m의 봉을 원효산, 812m의 봉을 천성산(千聖山)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양산시에서 이 2개 봉을 합쳐서 천성산으로 변경했고, 예전의 원효산을 천성산 제1봉, 천성산을 제2봉으로 지정했다. 예전에는 원적산이라고도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산군 산천조’의 기록을 보면 ‘원적산은 군(郡) 북쪽 20리에 있는데, 천성산 또는 소금강산이라고도 부른다’라고 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지지>에서는 모두 원적산으로 되어 있다.

천성산을 오르는 코스는 대표적인 게 10여 개일 정도로 많다. 이들 대부분은 계곡과 암자를 끼고 있다. 이날 내가 간 코스는 ‘내원사 매표소→산하동 계곡(사진1)→금봉암(사진2)→성불암 계곡→성불암­집북재→한듬계곡(사진3)→노전암→산하동 계곡→익성암’이다. 내원사매표소에서 직진하여 상리천이 있는 산하동계곡을 따라 걸었다. 산하동계곡은 아무리 가물어도 수량이 풍부한 곳으로 유명하다. 계곡 따라 난 임도를 걷다 보면 왼쪽으로 희미하게 비탈을 오르는 길이 있다. 금봉암 가는 길이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금봉암 주변에는 꽃이 많다. 주지 스님이 잘 가꾼 덕이다. 찔레꽃이 눈에 띄었다. 고려시대 원 지배기 때 찔레와 달래라는 자매가 살았다. 병든 아버지를 모시며 어렵게 살아가던 중 언니인 찔레가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게 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0여 년이 지나 찔레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옛집은 없어지고 집터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아버지는 찔레가 공녀로 끌려간 직후에 이를 비관하여 자살했고, 동생인 달래는 정신을 잃고 밖으로 뛰쳐나간 후 소식이 끊어졌다고 했다. 깊은 슬픔에 빠진 찔레는 동생 달래를 찾으려 산과 들로 헤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달래를 찾으려다 쓰러진 찔레를 눈이 하얗게 덮었다. 봄이 되자 그녀가 쓰러졌던 산길에 꽃이 하얗게 피었는데, 사람들은 이 꽃을 찔레꽃이라고 불렀다.

금봉암에서 되돌아 나와서 상리천 계곡 따라 조금 걸으면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노전암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성불암계곡이다. 성불암계곡 따라 조금 걷다가 오른쪽 비탈을 500m쯤 걸으면 한 폭의 그림 같은 암자가 나온다. 성불암이다. 오늘 만난 금봉암과 성불암은 그 자체로서 부처가 걸어 나올 것 같은 곳이다. 역시 발품을 팔아야 좋은 곳을 만나는구나. 축담에 앉으니 보이는 풍경이 한가롭기 그지없었다. 비워진 물병에 약수를 채우고는 떠나기 싫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곡 따라 계속 올랐다. 이윽고 만난 집북재, 집북재서 왼쪽으로 오르면 천성 공룡능선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천성산 2봉을 만날 수 있다. 직진하여 한듬계곡으로 향했다. 한듬은 본래 알아주는 오지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마을이 없어진 지 오래다. 한듬계곡은 한때 사람이 살았다는 곳으로는 여겨지지 않을 만큼 풀과 나무가 무성하다. 계곡 따라 계속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조계암과 안적암으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그냥 계곡 따라 내려간다. 계곡 풍경이 너무 좋아서 곳곳에서 음풍농월을 즐기고 싶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 오른쪽이 바로 노전암이다. 노전암을 지나 계속 가면 장대골이 나오고, 장대골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계곡 따라 걸으면 동침막골이 나온다. 동침막골에서 계곡 따라 직진하면 대성암이다. 대성암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등재된 책을 9권이나 소장하고 있다. 노전암은 한때 내방 손님에게 20첩 반상을 내어놓는 곳으로 유명했다. 건물들은 대체로 최근에 지어져서 옛맛은 없다. 대웅전 가는 길옆 작은 밭에 함박꽃이 가득하다. 함박꽃은 작약이다. 꽃이 크고 탐스러워서 함박꽃이라고 한다. 어릴 적 시골집 마당에 피어있던 함박꽃이 생각났다. 고향은 언제 어디서나 추억이다.


3. 우리나라의 산 이름 중에는 불교와 관련된 이름들이 유독 많은데, 천성산도 그렇다. 천성산이라는 이름은 물론 주봉의 옛 이름인 원효산도 그렇다. 옛날에 천성산에는 89개의 암자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18개가 남아있다. 천성산에 암자가 많은 이유는 ‘효척판구중(曉擲板求衆) 설화’에 잘 나타나 있다. 673년(문무왕 13)에 원효 스님이 당나라 태화사의 1000명 대중이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알고 ‘효척판구중(曉擲板求衆)’이라고 쓴 큰 판자를 그곳으로 날려 보내서 모두 살려준 것에 관한 설화인데, 화엄벌 등 천성산의 여러 지명과 암자들의 창건과 관련이 있다.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예전에는 산을 가면 꼭 정상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런데 20여 년 동안 거의 매주 산을 다니면서 그런 생각이 엷어졌다. 물론 여전히 산에 가면 꼭 정상을 가려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나는 정상에 가기 위해 산에 가는 것이 아니라 즐겁기 위해 산에 간다. 그저 산에 가면 마음은 비워져서 즐겁고 생각은 간명해서 한가롭다.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오늘의 산행코스
내원사주차장→금봉암→성불암→집북재→한듬계곡→대성암→노전암→내원사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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