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영남알프스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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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영남알프스 유감(有感)
  • 경상일보
  • 승인 2022.07.0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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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훈 울산MBC 편성제작부 PD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마을에서 배내골로 넘어가는 고개가 선짐이질등이다. 옛날 장꾼들이 짐을 진 채로 서서 쉬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 경사가 워낙 급하다보니 앉아 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배내골과 언양장을 이어주던 배내고개는 오두메기라고 불렸는데 기러기처럼 떠도는 장꾼들이 한데 모이는 곳이기도 했다.

이처럼 영남알프스는 보부상, 즉 장꾼들의 산이었다. 지금의 등산로는 대부분 과거 장꾼들이 다녔던 길이었다. 장꾼들은 뭘 팔기 위해 이 험한 산을 올랐을까? 첫째는 소금이었다. ‘염포’라는 옛지명이 말해주듯 울산바닷가는 소금의 생산지였다. 바다에서 먼 내륙지방일수록 소금은 비싸게 팔렸다. 소금장수들은 영남알프스 900m 능선을 넘어서 청도, 밀양, 영천으로, 멀리 안동, 영주까지 울산소금을 팔러 다녔다.

두 번째는 철광석이다. 울산 북구의 달천철장은 예부터 철광석의 산지였다. 철광석을 녹여 무쇠솥이나 괭이, 삽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료가 풍부한 산속으로 철광석을 가져와야 했는데, 운문사 앞 신원마을과 내와리 중점마을이 무쇠솥의 주된 생산지였다. 영남알프스 골짜기마다 지금도 숯가마터가 많다. 철을 녹이기 위해서 엄청난 숯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남알프스는 철광석과 숯이 이동하던 통로였다.

천황산 900고지엔 국가사적인 천황산 도요지가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자기 생산지다. 왜 이렇게 높은 곳에서 도자기를 만들었을까? 물론 흙과 땔감이 있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도자기 가마가 산아래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었기에 등짐장수들이 도자기를 지고 보다 수월하게 팔러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남알프스 긴 등산로에는 곳곳에 돌담을 쌓은 옛 건물터를 볼 수 있다. 특히 언양에서 석남재를 넘어 밀양 얼음골로 이어지는 쇠점골과 양산 하북에서 배내골로 넘어가는 오룡산 계곡길에 옛 건물터가 많다. 장꾼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했던 곳으로 추정이 되는데 이 산길을 오가는 장꾼들이 적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1000m 고봉이 즐비한 영남알프스, 그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마다 사연 없는 곳이 없다.

종교박해의 시대에 영남알프스는 종교의 자유를 찾는 이들에게 해방구였다.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가 밀양 단장면에 귀양을 오면서 영남알프스 주변으로 천주교가 처음 전파되었다. 1840년대 종교박해가 본격화되면서 많은 천주교인들이 영남알프스 산속으로 숨어들어 숯과 옹기를 구우며 살았고 조선인으론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가 신불산 죽림굴에서 두달 동안 생쌀을 먹으며 박해를 피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울산보다 언양에 성당이 먼저 생겼고 울산시내의 모든 성당은 언양성당에서부터 비롯됐던 것이다. 지금도 영남알프스 산골마을마다 천주교우들이 중심이 된 공소(公所)가 하나씩 있어서 영남알프스가 신앙공동체의 상징적인 곳임을 잘 말해준다.

한국전쟁 때 영남알프스는 좌우 이념 대립의 현장이기도 했다. 전쟁 발발과 함께, 함양 출신 남도부를 대장으로 한 북한 유격대가 가장 먼저 숨어든 곳이 주개바위 아래 주암골이었다. 빨치산의 수가 가장 많을 때는 250명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이들은 영남알프스에 아지트를 두고 부산, 포항까지 후방교란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파래소 폭포 위, 갈산고지라 부르는 681고지에는 지금도 빨치산들이 사용했던 참호가 남아있고 당시 빨치산 야전병원이었던 죽림굴에서는 페니실린 병이 발견되기도 했다.

여름이 막 시작되는 영남알프스는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다. 장꾼들의 고단한 발걸음도, 종교박해의 아픔도, 이데올로기의 대립도 이 산에서 멈춘지 오래다. 휴일이면 영남알프스 봉우리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정상표지석 앞에서 사진찍기에 바쁘다. 정상에 올랐다해서 산을 정복했다 말할 수 있는가? 영남알프스 험산준령에 스며있는 삶의 애환과 아픈 역사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이영훈 울산MBC 편성제작부 PD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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