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을 대표하는 두 시인 이백과 두보는 나이가 10살 차이 난다. 이백이 두보보다 10살이 많다. 당나라 현종 3년(744년) 초가을, 두 사람은 낙양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이백은 양귀비의 미움으로 장안에서 내침을 당한 후였고, 두보는 낙양을 중심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견문을 넓히고 있었다. 이백이 낙양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두보가 한걸음에 이백을 만나러 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이백은 자타가 인정하는 문단의 거성이었고, 두보는 이름 없는 무명시인에 가까웠다. 나이와 명성에서 큰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었지만, 둘은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했고 서로 벗을 자처했다.
이백과 두보는 산동과 하남 등지를 유람했는데, 둘이 함께 지낸 시간은 1년 남짓으로 길지 않았다. 그런데도 두 시인은 일생을 두고 시를 주고받으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붓을 놓으면 비바람도 놀라게 하고, 시를 지으면 귀신마저 울렸다(筆落驚風雨 詩成泣鬼神)’라는 두보의 평가는 이백이 이룬 문학적 성과를 가장 잘 표현하였다. 두보는 이백의 일생을 ‘영민함으로 시 천 수를 짓고, 방랑의 길에 술 한 잔으로 족한 삶(敏捷詩千首 飄零酒一杯)’이라 하였는데, 이백의 삶과 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 데서 나온 말이다.
망년지교(忘年之交), 나이를 잊은 사귐이라는 뜻으로, 나이보다는 재주와 덕으로 사귄다는 말이다. 역사 속에서 망년지교는 흔하게 찾을 수 있다. 고려 때 해좌칠현의 한 사람이었던 오세재는 53세 때 18살의 이규보와 벗하였고, 한나라 때 이형은 20살이 되기도 전에 50살이 넘은 공융과 사귀었다. 서로 벗으로 지냈던 정몽주와 정도전의 나이 차이는 5살이었고, 정약용과 조익현, 당나라 때의 두 시인 어현기와 온정균도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좋은 벗으로 오래도록 사귀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벗을 사귐에 있어서 먼저 나이를 따지고, 재물의 많고 적음을 따지고, 지위의 높고 낮음을 따진다. 부모는 아이에게 가난한 집 아이들하고는 어울리지 말라 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는 놀지 말라 한다. 어른들은 한두 살 나이 차이에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모두 어리석은 일이다. 좋은 벗은 그의 재주와 그가 품을 뜻, 그의 덕에 있다. 현명한 사람은 그에게서 배울 것이 있고 의기투합할 수 있는 사람, 존중과 배려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 남을 이해하려고 하고 알아주려는 사람, 그런 사람과 벗하려고 한다.
송철호 문학박사·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