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력공사가 ‘연료비 조정단가’를 7월부터 추가 인상키로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물가 인상에 대한 우려가 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의 원인과 그로 야기될 현상에 대해 면밀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기요금의 현실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세계 최고의 품질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가장 저렴한 수준의 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소비자 측면에서 느끼는 고효율과 저비용이라는 혜택은 전력공급회사인 ‘한국전력공사’의 경영상황 악화로 이어지고 있고, 이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전력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미 세계 유수의 전력공급업체가 도산으로 이어지는 현실인 만큼 우리도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전기는 화석연료를 통해 생산되고,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생산물의 가격이 오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전기요금은 이제껏 계속 동결되어 왔다. 최근 2년동안 국제 유연탄 가격이 4.8배, LNG 가격은 12.3배 올랐다. 사실상 국내 전기요금은 인하되어 온 셈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2022년 올 한해만 독일 43.3%, 영국 33.7%, 프랑스 24.3%, 스페인 68.5%, 일본 12.3%의 전기요금 인상이 있었다. 이는 전력산업의 유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국내 사정은 어떤가. 한국전력의 지난 해 적자는 5조8000억원 규모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올해 1분기에만 7조8000억원을 기록, 올해 최대 30조의 적자를 기록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단기적으로 전기요금의 동결 혹은 소폭 인상은 물가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방해가 될뿐더러,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의 투입으로 국가 재정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전기요금을 세금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으나, 전기요금 또한 사용량에 비례하여 비용을 지불하는 재화라고 볼 수 있다. 이를 공적자금으로 보전한다는 것은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면이 있다. 또한 공적 자금 투입은 임시방편일 뿐 장기적으로 국가 전력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앞으로도 현재 수준의 안정적인 전력망을 이용하기 위해서 전기요금의 현실화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전기공사기업은 전력망 구축의 최전선에서 대외적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전 재정건전성의 악화는 전기공사기업의 생계조차 위협해 에너지 피라미드의 기본부터 무너뜨리는 결과를 야기시킨다. 재정악화로 한전 발주물량이 감소로 이어져 당연히 유지·보수돼야 할 전력망을 제때 손보지 못해 발생하는 민원까지 고스란히 떠안는 불합리함 속에 있다.
지난 2020년 울산지역을 강타한 태풍 ‘마이삭’으로 울산에 발생한 대규모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전기공사기업들은 밤낮과 기상 악화를 가리지않고 복구에 나선 경험이 있다. 대규모 정전에도 빠른 복구를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력산업의 최전선이라는 사명감에 일정부분 기인했으나, 누적되는 경영 악화로 같은 혼란이 반복됐을 때 빠르게 수습하고 복구할 수 있는 기술과 인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위기가 닥쳤을 때 대비하면 늦다는 걸 우리 모두는 체험으로 알고 있다. 더 큰 위기가 닥치기 전에 현실적인 요금 책정으로 에너지 산업의 건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전력산업을 포함한 에너지 산업 변화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변화에 발 맞추고, 세계의 전력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투자와 기술개발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 확보가 필수인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의 요금제로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는 변화하는 전력 생태계에서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도태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전기요금의 현실화는 전력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더 나은 기술 발전을 통해 에너지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모든 재화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비용 지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대원칙에 전력산업만이 예외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에너지 산업의 미래를 대비하는 선구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병국 한국전기공사협회 울산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