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화첩]몽돌과 파도의 화음소리가 풍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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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화첩]몽돌과 파도의 화음소리가 풍경이 된다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2.07.12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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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주전몽돌해변(江東朱田몽돌海邊)(76×52㎝, 한지에 수묵담채. 2022)

현대자동차 공장을 지나 남목 고개를 넘어 주전 몽돌해변으로 간다. 1027번 지방도는 주전에서 정자항까지로 굽은 길이다. 굽은 길은 사람의 노고로 만들어졌다. 굽은 길에는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과 삶이 배여 있다.

바다와 함께 가는 길은 포구를 가졌다.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주전, 당사, 우가, 제전, 판지, 정자 포구다. 길은 포구와 포구를 잇고, 포구는 사람과 바다를 안고 산다.

길이 사람이 만든 가공품이라면 해변은 바다가 만든 천연 수제품이다. 특히 이곳에서 마주하는 주전·강동 몽돌해변은 풍경이 소리를 연주하고 소리가 풍경을 연출하는 공간이다.

몽돌해변의 풍경 소리는 하늘에서 온다. 구름 없는 여름날, 하늘은 엷은 푸른빛으로 동해의 수평선을 가른다. 수평선은 하늘보다 짙푸르다. 바다가 바람을 따라 움직인다. 해변으로 몰려오는 물결이 일렁인다. 출렁댄다.

밀려오는 물결이 몽돌밭에 하얀 거품 물보라를 해변에다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한다. 바다가 몽돌을 어루만지고 굴리면서 소리를 모았다가 흩뿌린다. 소리는 퍼지면서 울린다. ‘쏴~아 쏴~아~, 싸르르 싸르르~, 자르르 자르르~’를 연주한다. 아니다. ‘자갈자갈~, 와글와글~, 차르르 차르르~’ 화음이다. 파도와 몽돌의 의성어다. 의성어는 소리의 모방이다. 의성어는 감각의 한 부분이다.

풍경과 소리가 어우러진 감각은 우리 몸을 감싼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썰물과 밀물, 꿈틀대는 바다와 몽돌해변에 쏟아지는 파도를 보면 욕망은 입을 다물고, 파도 소리를 들으면 고뇌는 뒷걸음쳐 사라진다.

몽돌해변 풍경 소리는 바람으로부터 온다. 바람은 몽돌밭에다 물소리를 흐르게 하고 몽돌에다 바다를 그리고, 새겨넣는다. 바람은 파도의 붓질을 반복한다. 파도의 칼질로 조각을 한다. 바람이 부는 대로 파도는 몽돌을 보듬고 다듬고 밀고 당긴다. 몽돌은 뒹굴고 부딪치면서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몽돌은 세파를 겪으면 겪을수록 부드러우면서 단단해지는 절차탁마의 고수다.

그러나 햇빛 속에서 몽돌은 바래진다. 몽돌이 메말라 갈 때는 말을 잃는다. 말을 잃고 침묵하는 순간 물에 젖어 빛나던, 물속에서 비늘을 달고 헤엄치던 몽돌은 바닥의 소리를 듣는다. 바닥에서 솟아나는 소리야말로 절창이다. 몽돌해변의 풍경 소리가 그렇다.

몽돌은 시작도 끝도 없기에 모나지 않고 둥글고 원만하다. 곡선과 순환의 삶이다. 몽돌은 머물면서 멈추지 않기에 매끈하고 맑다. 몽돌은 파도의 소리를 따라 흐른다. 맑은 것은 흐르고, 흐르는 것은 맑다. 몽돌은 바다이면서 세월의 무늬다. 몽돌은 바다의 소리이면서 세월의 음성이다.

나는 오래전 강동 몽돌해변에서 대여섯 명의 시인, 작가들과 함께 밤새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쪽 귀는 문학을, 다른 한쪽 귀는 몽돌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하룻밤을 지냈다. 낮에 본 풍경과 밤에 들은 소리를 끄집어내어 작품을 만들려고 삼사 개월을 헤매었다. 일 년이 다되어서 가까운 사람을 땅에 묻고 온 다음 날 밤, 바다가 우는 소리를 듣고 깨어나 졸시 <몽돌 파도>를 완성했다. 읊었다.

저어기, 저곳
바다 휘파람 휘, 휘, 휘리릭
청동빛 하늘 문을 열면서 오네

입을 벌려라, 욕망이여
비린내 나는 말의 이빨이여
하얀 소금에 절여서
살다가 흘린 눈물 찌꺼기를
출렁출렁 빛나게 하라

바다 울음 말았다 펴는
저기, 저곳에 오, 오, 쏴르륵
바다의 시퍼런 입술이 해변을 쪽쪽 빨자
바닥을 기는 것들의 삶에
몽돌, 참 참 참
절창으로 터지네

그림=최종국 한국화가·글=문영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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