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타리에 가려서/ 아침 햇볕 보이지 않네// 해바라기는/ 해를 보려고/ 키가 자란다
-‘해바라기’ 전문(오장환)
마른 장마가 계속돼서 그럴까. 곳곳에서 해바라기가 쑥쑥 자라고 있다. 신현정 시인은 ‘해바라기 길 가다가/ 서 있는 것 보면/ 나도 우뚝 서 보는 것이다~’고 했다. 필자는 어렸을 적 해바라기꽃을 올려다 보며 나도 이만큼 클 수 있을까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해바라기는 여름날 소나기가 한차례 퍼붓고 나면 또 그만큼 컸다.
해바라기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더욱 유명해졌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해바라기씨유 소비량의 52%를 책임지고 있다. 실제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는 광활한 들판을 보면 끝이 안 보일 정도다.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의 국화(國花)다.

해바라기 들판은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Sunflowers)’에 잘 소개돼 있다. 영화 ‘해바라기’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가슴 아픈 이야기다. 여주인공 지오반나의 남편 안토니아는 히틀러의 파병제안을 수락한 무솔리니 때문에 할 수 없이 원정군이 돼 우크라이나 전선에 왔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찾은 남편은 생명을 구해준 러시아 여인과 결혼해 자식까지 낳고 살고 있었다. 결국 소피아 로렌은 혼자서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영화 ‘해바라기’의 주제가는 가슴을 후벼판다. 광활한 해바라기밭에서 망연자실해 서 있는 소피아 로렌의 모습은 더욱 애절하다. 가히 평생 잊지 못할 명장면이라 할만 하다. 해바라기의 꽃말은 ‘당신만을 바라봅니다’ ‘당신만을 사랑합니다’이다.
예술가 중에 특히 해바라기는 좋아했던 사람은 빈센트 반 고흐였다. 고흐는 1888년 프랑스 남부 지방인 아를에서 여러 점의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는데, 그가 해바라기 그림을 그린 것은 친구인 폴 고갱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해바라기는 태양처럼 뜨겁고 격정적인 자신의 감정을 대변하는 영혼의 꽃이라 할 수 있다.
‘해바라기’라는 이름은 중국 이름인 향일규(向日葵)를 번역한 것이다. 葵자는 원래 ‘아욱 규’자지만 ‘해바라기 규’자로 통한다. 바야흐로 해바라기의 계절이다. 푸른 창공에 노란 해바라기가 피어 있는 것은 보면 유년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곰보딱지 아저씨/ 외딴 집에/ 해바라기 형 아우/ 돌고 있어요// 큰 해바라기 빙빙/ 해 보고 돌고/ 꼬마 해바라기 빙빙/ 구름 보고 돌고 -‘해바라기 형제’ 전문(박목월)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