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도시를 꼽으라면 나는 그 첫 손가락에 이스파한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페르세폴리스가 페르시아 문명의 뿌리라면 이스파한은 단연코 이란 문명의 꽃이다. 이스파한은 고대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로부터 이란의 중심에 해당하는 중요한 도시였다. 그러나 이곳이 제국의 수도로서 새롭게 건설된 것은 16세기 사파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사파비 왕조의 압바스 1세는 1597년 이스파한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이곳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곳을 세계의 중심답게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건설하려 했다. 많은 건축가와 공예가들은 왕의 지시를 어김없이 실천했고, 그 결과 ‘세상의 절반’이라는 수식어를 얻을 만큼 아름다운 도시와 건축을 만들었다.
그 아름다움은 박제가 되어 오늘날까지 도시의 골간을 이룬다. 고대 페르시아 문명 위에 이슬람 문명이 결합되었으니 그 혈통적 우수성은 의심할 바가 없을 것이다. 심원한 역사의 무게와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 그리고 그를 침해하지 않도록 배려한 현대적 재활용들이 너무도 조화롭게 공존한다. 그러하기에 이스파한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며, 이란의 정신적 수도로 남아 있다.
야즈드에서 이스파한으로 향하는 길도 대부분 사막이다. 사막이라고는 하지만 고운 모래가 아니라 거칠고 굵은 자갈이 섞인 황무지다. 이스파한으로 접근하면서 사막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짙푸른 녹음으로 그늘 지운 가로수 사이를 지난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강을 중심으로 번화한 현대도시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 강물이어라! 한국에서라면 흔하디 흔한 강물이 이토록 신선하고 청량할 줄이야.
자얀데(Rud-e Zayande)강은 이스파한의 중심을 가른다. 거대한 오아시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강은 이스파한을 제국의 수도로 만들었던 자연적 기반이다. 규모는 울산의 태화강 정도이지만 넓은 면적의 강변이 공원으로 조성되어 강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맑고 깨끗한 강물이 도시를 투영하면서 아름다운 산책로를 갖춘 공원이 되어 시민들을 불러 모은다.
강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호수같은 강물이나 강변공원만이 아니다. 강의 양쪽을 건너지르는 아름다운 다리가 중요한 경관적 오브제가 된다. 유서 깊고 아름다운 도시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이스파한의 다리 또한 감동적이다 못해 충격적이다. 씨오세 폴(Si-O Se Pol)은 그 대표적인 걸작으로서 33개의 아케이드로 이루어진 다리다. 이 다리는 교각과 상층부의 2층으로 구성되며, 아름다운 아치로 장식되었다. 반복적인 아치만으로도 교량의 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들의 재능과 감각이 부러워 질투가 날 정도다.
상층부는 도보전용으로서 양편에 아치로 장식된 벽을 세웠다. 마치 중세건물의 내부공간처럼 품격과 아늑함을 갖추었다. 벽에 뚫린 아치형 개구부는 강을 조망하는 시각 틀이다. 아치 밖으로 나서면 발코니로 이어져 누각과 같은 조망대가 된다. 황혼이 지는 쟈얀데 강에 물새들이 군무를 이룬다. 연인들의 밀회가 더욱 뜨거워질 만큼 낭만적인 도시 경관이다.
다리 밑으로 들어가면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교각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아 노천카페로 사용하고 있다. 여름철 다리 밑만큼 시원한 공간이 있을까. 심지어 교각 안에는 은밀한 방까지 설치했다. 물담배와 차를 즐길 수 있는 카페 공간이다. 다리 밑에 낭만적인 찻집이라니. 세상에 하고 많은 다리를 보았지만, 다리 밑의 공간을 이토록 재치 있게 꾸민 곳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스파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단연코 하주교(Khaju bridge)다. 이 다리는 폭 12m, 길이 132m로서 씨오세폴 다리보다는 좁은 편이다. 이 다리의 초창은 티무르 지배시기인 15세기로 올라간다. 그러나 현재의 모습은 압바스 2세가 1650년에 재건된 것이다. 1873년에 보수되었지만 17세기의 모습을 거의 잃지 않았다고 한다.
교각에는 수문을 설치하여 댐으로서의 기능도 갖추었다. 홍수기와 갈수기에 따른 수량의 조절도 중요한 기능이지만, 조절된 수면은 다리의 상류에 호수와 같은 저수지를 형성한다. 넓고 고요한 수면이 놀잇배를 즐길 수 있는 호수공원을 만들었다. 다리 공간은 씨오세 폴과 유사하다. 2층으로 구성되고 반복적인 아치 개구부와 전망용 발코니를 갖는다. 그러나 폭이 좁기에 공간감은 더 아늑하고, 아치 상부를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해 색채감이 훨씬 우수하다.

그 무엇보다도 이 다리의 조형적 탁월성은 중앙에 돌출된 팔각형 파빌리온이다. 이것은 다리 중간에 설치된 팔각형 정자에 해당한다. 그 내부의 천정은 마치 바로크 성당의 볼트 천장처럼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있다. 이곳을 ‘왕자의 방’이라고 부르는데, 그만큼 고급스러운 품격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닐까. 정자로 분절된 다리의 조형성은 피렌체나 베니스의 다리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우수한 조형미와 공간미를 갖는다.
저녁이 되면 온 도시 사람들이 강변으로 몰려든다. 강변에서 보는 황혼의 도시 풍경은 황홀경이다. 이스파한의 다리에서 살기 좋은 도시를 생각한다. 현대도시는 과연 400년 전의 이스파한보다 살기 좋은 도시일까. 더 빠르고, 더 풍요롭고, 더 편리해졌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움, 삶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여유로움, 그리고 지속가능하고 품격을 갖춘 문화 경관, 그것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낙원을 향한 시민의 뜻과 정성이 모아질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