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계절, 태양을 뒤로하고 동국대학교 박물관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탑 앞에서 잠시 당황한다. 보협인다라니경이 봉안된 보협인석탑이다. 형식도 매우 독특하여 5개의 네모난 돌로 구성되어 있다. 석탑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을 걸어온다. 비밀을 해독하는 시간은 좀 오래 걸릴 것 같다.
보협(寶)은 ‘보배를 담은 상자’라는 의미다. 그 상자에 모든 부처님의 전신사리 공덕을 기록한 다라니를 모셔서 탑을 조성한 것이다. 이 경에 의하면 보협인다라니를 쓰거나 독송하거나 몸에 지니거나 공양을 올리면 무량한 공덕이 있어 나쁜 재앙을 물리치고 부처님의 신력으로 가호를 받게 된다고 한다. 보협인탑을 처음 세운 사람은 중국 오월국의 마지막 왕인 충의왕 전홍숙이다. 자신이 흠모한 인도의 아소카왕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8만4000기의 탑에 나누어 봉안한 행적을 쫓아 금과 동, 철 등의 재료로 소탑 8만4000개를 만들고, 그 속에 일일이 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한데서 유래한다.

국내 유일의 보협인석탑은 원래 천안시 북면 대평리 절터에 있었다. 그 주변에서 수습된 석재로 복구는 되었지만 완전한 형태는 알 수 없다. 탑신석에는 석가의 본생담인 전생설화를, 옥개석으로 보이는, 탑의 최상부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일생의 중요한 장면인 불전도를 새겼다. 국보지만 철책도 없고 비상벨도 없는 석탑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불전도 중 최후의 공양 장면을 보기위해 발뒤꿈치를 최대한 들고 코를 박다가 물러선다. 열반에 드는 형상 앞에선 딱 한발만 다가간다. 박물관 안은 더 없이 고요하고 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부처의 신력처럼 밝다. 서서히 암호를 풀어가는 중이다.
고려인들은 보협인다라니경을 봉안한 것도 모자라 탑의 표면에 부처의 본생담과 불전도를 새겨 진실공덕을 쌓아 올렸다. 보협인탑이 국보가 된 이유다. 한참 시간여행을 하는데 직원이 슬며시 들어와 우리를 살핀다. 강렬하게 쏘아대는 햇빛화살을 받으러 나갈 시간이 되었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