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최고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1990년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쓰리테너) 대중적인 음악회를 개최했고, 2년 뒤에는 ‘파바로티와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팝스타들과 함께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 일부 평론가들은 클래식의 권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다수는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벽을 허물었으며 클래식의 대중화를 이끌어낸 기획이었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쇠락하던 클래식 음반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대중들의 관심 또한 상승했음은 물론이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국악 연주가나 소리꾼이 힙합이나 재즈 등 대중음악과 협연을 하거나 퓨전음악을 연주하면 정통(正統)과 전통(傳統)에 도전하는 것으로 치부되었기에 젊은 창작음악인들의 실험적 활동 환경은 척박했다. 하지만 전통과 현대의 벽을 허물고 자유로운 음악적 열정을 펼쳐낸 많은 국악인의 노력으로 한국의 전통음악은 새로운 물줄기를 열었다. 황병기, 김덕수, 김영동, 슬기둥, 그리고 최근의 이날치, 잠비나이, 서도밴드 등으로 이어지며 대중성과 음악성, 예술성을 겸비한 케이-소리(K-SORI)라는 새로운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
울산에이팜(아시아퍼시픽뮤직미팅, APaMM)이 9월2~4일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펼쳐진다. 2012년 울산에 국내외 음악산업관계자를 초청해 한국음악과 아티스트를 홍보하고 국제적인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에이팜은 올해로 11회를 맞이한다. 초기에는 사업의 방향성이나 의도, 정체성에 대한 이견이 있었으나 꾸준히 사업을 발전시키면서 울산에서 유일한 국제음악행사로 자리 잡았다. 한국적인 선율을 담아 현대적인 창작을 하는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기획되었던 에이팜은 2019년부터 국제적 교류를 위해 회원국을 선정하고 에이팜 포럼을 개최하면서 마이스(MICE)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포럼에 가입된 국가는 호주, 캐나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12개국이며 저명한 음악기관과 대표자가 참여하고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음악의 핵심 플랫폼인 울산에이팜은 아·태 지역의 음악문화교류의 허브로 성장하면서 우리 음악의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그동안 에이팜과 함께한 아티스트는 이날치, 잠비나이, 고래야, 백다솜, 박지하 등 140여 팀이며 이들 중 다수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SXSW), 워맥스(WOMEX) 등 세계 최대 뮤직마켓에 진출해 국제적 명성을 높일 기회를 얻었다.
올해 에이팜에 참여하는 출연팀은 서도밴드, 상자루, 거문고자리, 공명, 딸, 신민속악회 바디, 줄헤르츠, 황진아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퓨전국악인들과 울산에서 활동하면서 뛰어난 기량으로 무대를 압도하는 에이팜프로젝트, 김미경 판소리연구소와 풍물예술단 버슴새, 내드름연희단과 이선숙 판소리연구소, 라플렛 모던앙상블과 앙상블제이 등이다. 케이팝 못지않은 역량을 갖춘 음악인들이 울산의 가을을 한국적 선율로 가득 채울 것이다.
또한 금년 울산에이팜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지역특화 국제이벤트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울산의 관광자원을 기반으로 학술대회, 세미나, 포럼 등 마이스(MICE) 행사를 개최하는 ‘지역 MICE 융복합’ 사업으로 진행된다. 울산문화재단에서는 ‘2022 울산에이팜’에 참여한 외국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태화강국가정원, 반구대 암각화, 간절곶, 대왕암 등 울산의 명소를 포함한 울산관광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제이벤트 공모사업과 연계해 울산과 울산에이팜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울산의 문화적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이는 기회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평론가이자 작가인 박용구 선생의 말처럼 예술이란 “스승을 따라 배우고, 파격을 행하며, 고유한 자신만의 예술세계로 발전하는(習破離)” 단계를 거치기 마련이다. 매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과 시간의 투입이다. 작품의 완성도는 기본적으로 공들인 정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울산에이팜이 훌륭한 케이-소리를 통해 ‘새로운 위대한 울산’을 갈망하는 시민들에게 기쁨과 희망의 무대를 펼쳐주길 기대해본다.
김정배 울산문화재단 대표·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