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은 꽃이 제 아무리 고와도 열흘 이상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7월부터 9, 10월까지 석달 열흘 동안 피는 꽃이 있으니 바로 목백일홍(木百日紅)과 무궁화(無窮花)다. 요즘 울산 전역에 무궁화와 목백일홍이 가득하다. 특히 목백일홍은 장마가 끝나면서 더욱 붉은 빛으로 타올라 이목을 끈다.
그러나 이 두 꽃은 자세히 보면 오히려 다른 꽃보다 빨리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석달 열흘 동안 화려하게 피어있지만 하나하나의 꽃은 아침에 피어나 저녁에 지는 것이다. 치열하게 한 송이씩 피어올리면서 한 여름을 보내는 이 꽃들은 그래서 묘한 매력이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에 거듭된 반전이 숨어 있다고나 할까.
무궁화는 ‘무궁무진하게, 끝없이 피는 꽃’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무궁화를 뜻하는 한자 ‘槿(근)’ 자의 구성을 살펴보면 ‘수명이 짧은 나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산해경>에는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之國 有薰花草朝生暮死)’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훈화초란 무궁화를 말한다.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시(詩) ‘放言(거침없이 말하다)’에서 무궁화를 통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준다. “소나무는 천년을 산다지만 끝내 말라 죽는데(松樹千年終是朽)/ 무궁화는 하루일망정 영화를 누리는구나(槿花一日自爲榮)…” ‘근화일일자위영(槿花一日自爲榮)’은 요즘에도 자주 인용되는 한자성어다.
무궁화는 중심부에 붉은색(丹心)을 갖고 있는 단심계(系)를 가장 먼저 쳐준다. 흰색 바탕에 단심이 박힌 백(白)단심, 분홍과 붉은색 바탕에 단심이 박힌 홍(紅)단심, 자색 또는 청색 바탕에 단심이 박힌 청(靑)단심 등 3종이 있는데, 그 중 애국가 후렴과 함께 나오는 무궁화는 1~3절 모두 홍단심이다.

아름다움이 애인의 것이라면/ 안식은 아내의 것,/ 무더운 여름날/ 아내의 무릎에 누워/ 그녀의 시원한 부채질 바람으로/ 낮잠을 자본 자는 알리라./ 여자는 향그러운 꽃 그늘이라는 것을,/ 꽃의 아름다움보다는/ 그늘의 안식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배롱꽃’ 일부(오세영)
목백일홍(배롱나무)은 석달 열흘 동안 새 꽃을 피워 올린다. 꽃가루받이가 된 것은 시들고, 그 옆에 있는 새로운 꽃봉오리가 다시 꽃을 피운다. 이 꽃들이 가지마다 피면 마치 7~8월 염천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