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라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교사의 촉을 자극하는 이슈가 있다. 나의 촉은 ‘생활 지도’ ‘회복적 생활 정의’ ‘세계시민’ 이런 이슈에 꾸준히 발동됐다. 여기에 하나의 촉이 보태졌다. ‘다문화 교육’이라는 이슈이다.
지금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창 시절에 다문화 친구를 가져본 경험이 없을 듯하다. 다행히 다문화 교육의 필요성을 예견하고 준비한 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필자와 같이 평범한 교사는 연수와 워크숍에 참석해서 그들의 경험과 조언을 전수받으며 교육 현장에 임하고 있다.
요즘 울산 교사의 촉을 민감하게 만드는 이슈가 한 가지 더해졌다.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 학생들이다. 올해 우리 지역 울산에 아프가니스탄 특별 기여자 29가구 157명이 정착했고, 그들의 자녀 85명이 유치원과 초·중·고에 입학했다. 다문화 공동체로서 울산 교육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이들의 울산 이주와 입학은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는데도, ‘이슬람’과 ‘난민’을 배우는 교사 프로그램이 속속 마련됐다. 교육청 차원에서도 신속하게 준비되었고 교사 모임과 교직 단체에서도 자발적으로 빈번하게 열리는 것을 볼 때마다 그 기획력과 정보력에 놀라곤 했다. 개인이 알고 있는 지식은 작은 씨알 한 알이지만 함께 관심을 가지고 연구 모임을 열 때 그 열매를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나눠가질 수 있는지를 바라보는 건 경이로웠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무슬림이고 전쟁과 내전으로 세계 인구 80명 중 1명이 난민이라고 한다. 이런 시기에 평화 교육과 더불어 난민에 대해 아는 것은 이주민, 선(先)주민 학생 모두를 세계시민으로 키워나가는데 중요한 일이다. 많은 선생님들이 자원하여 연수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필자도 이슬람과 난민을 이해하기 위한 교사 프로그램에 벌써 몇 차례 다녀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프로그램은 전교조 울산지부에서 주최했던 ‘난민 수업’이었다. 강사로 나온 교수가 대학에서 했던 본인 난민 수업 사례를 들려주었다. ‘이렇게 해보자’라기보다는 ‘나는 이렇게 수업해서 난민 수업에 부족함을 느꼈다. 선생님들이라면 이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 가겠는가’라는 열린 방향이었다.
우선 교수자의 인내심에 한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가르쳐야 할 내용과 다른 의견을 주장하거나 잘못된 것을 너무나 설득력 있게 주장해서 수업이 의도와는 다르게 흐를 때가 있다. 그때 대부분의 교사는 그 학생에게 조곤조곤 설명해 주어 잘못된 의견이나 편견을 하나씩 깨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 교수자는 오히려 반대 주장을 활용하여 학생들이 토론을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도왔고, 무엇보다도 남과 다른 의견을 말해도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는,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수업의 장을 펼치고 있었다.
이 난민 수업 사례가 두고두고 곱씹어졌다. 그 교수자의 수업에서 우리 교육 공동체의 미래를 찾아보고 싶어서이다. 수업에서 의도한 것과 다른 의견을 내어 수업 방향을 방해(?)한 학생처럼, 우리가 지향하는 다문화 교육 방향과는 다른 혹은 엇나간 상황을 학교에서 마주할 일이 많아질 듯싶다. 출신 배경이 다른 만큼이나 수많은 갈등 상황이 솟아날 것이다. 그럴 때 아마 필자는 ‘통합성’이라는 하나의 잣대만을 염두에 두고 학생들을 ‘계몽’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량 있는 교사라면, 그 교수자처럼 오히려 반대 주장을 활용하여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돕고, 남과 달라도 이상한 시선을 받지 않는, 심리적으로 안전하게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다문화 교육의 장을 펼쳐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교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현재와 미래 사회 사이에, 문화와 문화 간에, 수많은 편견과 차별 사이에 개입해서 작용할 수 있는 ‘정의로운’ 힘을 학생에게 심어주는 일이다. ‘달라도 안전한 학교’여야 가능한 일일 터이다.
울산은 다문화 공동체로서 꾸준히 성장해왔다. 올해 아프가니스탄 학생들의 입학으로 성장에 추진력을 더하는 느낌이다. 울산 교육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발적 부담감을 느끼며 마음을 다져 먹는다.
이인경 울산 야음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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