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화첩]고래가 남긴 삶, 바다 그리고 그리움을 만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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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화첩]고래가 남긴 삶, 바다 그리고 그리움을 만날 수 있는 곳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2.08.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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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포, 시대를 품다

장생포란 지명은 ‘장승개’에서 왔다. 장승은 옛날 마을 어귀나 길가에 세워진 이정표의 푯말이며, 마을을 지키는 목신이다. ‘개’는 바닷가를 이르는 말로 포구를 뜻하는 옛말이다. 장승개가 한자로 음역되는 과정에서 불로장생이란 뜻이 강조되면서 장생포가 되었다.

장생포 관련 기록은 <면앙정가>를 지은, 송순의 문집인 <면앙집>에 실린 시 ‘망선대’에 나온다. 송순은 조선 성종 때 경상도관찰사로 울산지역을 순시하다 장생포 망제산 정상에 있는 돈대에 올라 시를 짓고, 서문에 ‘망선대’의 내력을 밝혀 놓았다. 이 시를 소개한 송수환의 <태화강에 배 띄우고>에 서문이, “좌병영 남쪽 30리 쯤에 대(臺)가 있어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해운대와 으뜸을 다툰다. 하루는 병사(병마절도사) 장세호 공, 수사(수군절도사) 봉승종 공과 울산 앞 바다에서 배를 타고 염포를 지나 곧바로 대 아래로 갔다. 이날은 마침 날씨가 화창하여 대에 올라 구경하기가 좋았다. 좌우 사람들이 모두 대에 아름다운 이름이 없는 것을 흠이라 하여 내가 망선대라 이름 짓고 아래와 같이 절구 두 수를 지었다. 장세호 공이 이를 새겨 병영 동헌에 걸고 영세토록 전하고자 했다”라고 번역되어 실렸다. ‘망선대’는 신선에 비유된 대에서 본 울산 바다 풍경을 찬탄한 시다.

망선대가 있던 망제산은 장생포 양죽마을 바위산이었다. 양죽마을은 울산대교 아래 있었다. 망제산의 제(帝)는 임금을 뜻한다. 고종의 죽음을 슬퍼한 양죽 사람들이 이 산에서 함께 울었다 하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3·1운동 때는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망제산에 올라 통곡을 했다고 한다. 대한제국 때인 1899년 러시아가 고래를 해체하는 포경기지로 장생포를 지정하면서 고래잡이가 시작되었다. 1960년대 울산이 공업화되면서 망제산도 양죽마을도 모두 철거되고 사라졌다.



◇장생포, 고래를 품다

울산을 고래도시로 세계적으로 알린 사람은 미국의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 로이 채프 앤드류스다. 그는 1912년 울산에 와 장생포에서 1년을 머물면서 멸종 위기종인 귀신고래를 조사하여 학계에 보고했다. ‘한국계 귀신고래’라 명명한 앤드류스는 이 고래가 울산 앞바다를 회유한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에 정부에서 1962년 울산 앞바다를 ‘울산 귀신고래 회유해면’이란 명칭으로 천연기념물 제126호로 지정했다. 1964년 다섯 마리가 포획된 귀신고래는 1977년 방어진 앞바다에서 두 마리가 관찰된 이후 현재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1912년 앤드류스는 갓을 쓰고 희고 두터운 겨울 한복을 입은 남성,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녀자 등 장생포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여자들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예뻐 보였고, 부녀들이 남녀유별 원칙에 엄격했고 생활력이 강했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장생포 사람들의 삶과 풍속을 알려주는, 소중한 자료로 고래문화마을 내 앤드류스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울산은 고래 도시로 선사시대부터 고래와 더불어 살아왔다. 반구대암각화가 그 같은 사실을 말한다. 수십 년 전 울산 시내 건물 터파기 공사 중 고래뼈가 출토되었다. 원시시대에는 울산지역이 고래가 노닐던 터전이었음을 알려준다. 고래가 없었다면 울산도 다른 공단 도시처럼 그저 그런 도시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장생포가 고래잡이 전진기지가 되면서 울산은 역동적 고을로 변했다. 1960년부터 1970년대까지 번성하던 장생포는 1986년 상업포경이 금지되면서 쇠락했다. 그러다가 장생포가 2008년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면서 고래문화마을로 거듭나게 되었다.

고래문화는 시원과 그리움의 유적이다. 고래문화는 생명의 문화요, 생명력의 회복을 염원하는 문화다. 장생포에 가면 고래가 남긴 삶과 바다와 그리움을 만난다.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머니의 삶도 만난다.

그것은 흘러가고 사라진 것들이지만 다시 만나고 새롭게 태어날 것을 꿈꾸는 삶이다. 그렇다. 꿈꾸는 이들에게 고래는 살아있다.

고래의 몸체, 고래고기의 맛, 고래의 울음소리, 물뿜기, 고래의 도약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고래는 살아있다. 고래는 문화예술로 살아난다.

창작 스튜디오 장생포고래로131과 문화마당 새미골과 장생포 아트스테이, 문화창고에서 고래는 살아난다. 고래는 과거이면서 현재며, 현재이면서 미래다. 장생포 고래문화마을과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이 그렇고, 장생포가 그렇다. 그림=최종국 한국화가 글=문영 시인

※QR코드를 찍으면 간단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은정 인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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