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스개 소리로 ‘초복, 중복, 말복 다음에 광복’이라고 했는데, 어제는 말복(末伏)과 광복(光復)이 한날이었다. 말복 또는 광복절이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달라질 법도 한데 올해는 가마솥 더위가 식을 줄 모른다. 한 낮에는 매미가 악을 쓰면서 울고 하늘은 여전히 염천(炎天)이다.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말이 실감나는 시기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 구름 걸려 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려놓고 갔어요/ 뭉게구름 흰 구름은 마음씨가 좋은가봐/ 솔바람이 부는 대로 어디든지 흘러 간대요

박목월이 지은 동요 ‘흰 구름’은 이 맘때의 여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가로운 시골의 여름정취를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박목월이 지은 시 ‘나그네’가 연상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 리….’ 나그네와 미루나무, 그리고 구름이 한 폭의 그림같다.
실제 태화강 국가정원에는 두 그루의 미루나무가 사이좋게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느낌표 두개를 세워놓은 것 같다.(사진) 그 미루나무 꼭대기에는 항상 구름이 걸려 있다. 어떤 시인들은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루나무는 버드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원산지는 미국이다. 국내에 처음 들어올 때는 미국(美國)에서 들어온 버드나무(柳)라는 뜻으로 ‘미류(美柳)’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미류나무’와 ‘미루나무’가 혼용되다가 1988년 표준어 개정에서 ‘미루나무’가 정착됐다. ‘미류’의 이중모음 ‘ㅠ’의 발음이 어려워 상대적으로 발음하기 편한 단모음 ‘ㅜ’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미루나무는 높이가 30m, 지름이 1m 정도 자란다. 그런데 이 나무가 재질이 약해 별로 쓸 데가 없다고 한다. 거기다 키가 워낙 크다보니 태풍에 잘 쓰러졌다. 옛날에는 생장이 빠르고 이식이 잘되기 때문에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고 한다.
앞 냇둑에 살았던 늙은 미루나무는/ 착해빠진 나처럼 재질이 너무 물러서 재목으로도/ 땔감으로도 쓸모없는 나무라고 핀잔을 받았지/…/ 아무도 탐내지 않아 톱날이 비켜 갔던 나무/ 아주 오래 오래 살다 천명을 받고 폭풍우 치던 한여름/ 바람과 맞서다 장쾌하게 몸을 꺾은 나무 -‘미루나무’ 일부(공광규)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