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문답]정상에 펼쳐지는 한 폭의 그림, 무릉도원이 예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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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문답]정상에 펼쳐지는 한 폭의 그림, 무릉도원이 예인듯…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2.08.26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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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에서 본 다랑이논
▲ 오산에서 본 다랑이논

1. 영화 <서편제>의 배경지로 유명한 섬 청산도, 한때는 신선이 사는 곳이라고 하여 선도(仙島)라고 했다. 청산도 범바위에 얽힌 전설은 신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옛날 옛적에 신선을 모시고 다니던 범이 있었다. 어느 날 신선이 남쪽의 신성한 섬 청산도에, 불로불사의 생명 기운을 가진 십장생을 모으라고 말했다.

범은 십장생에게 신선의 말을 전하였고. 그 말을 들은 십장생은 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명색이 12간지에 들어있는 자신이 빠졌다는 것에 몹시 화가 난 범은 신선이 내린 명을 거역하고 그중 하나인 사슴을 해치고 애기범과 청산으로 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신선은 크게 노하여 범에게 이르기를 “달빛이 바다를 비추기 전에 떠나라. 만약 그때까지 떠나지 않으면 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산도를 떠나기 싫었던 범은 달빛이 바다를 비추기 전에 떠나지 못하였고 결국 그 자리에서 돌이 되고 말았다.’

▲ 대봉산 정상석
▲ 대봉산 정상석

청산도의 산행코스로 제일 유명한 것은 매봉산을 오르는 것이다. 매봉산(385m)은 청산도에서 제일 높은 곳이면서도 접근성이 좋고 코스가 짧기 때문이다. 주변에 범바위 등 명소와 가까운 것도 한몫한다. 나는 일부러 매봉산 코스를 피했다. 사람이 잘 찾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힘든 코스를 택했다. ‘보리마당~오산(383.2m)~대봉산(379m)~대성산(345.9m)~대선산(313.3m)~청산항’ 코스였다.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시도한 산행이니만큼 일부러 홀로 산행을 택했다. 이럴 때는 대체로 가본 적 없는 곳, 또는 길이 없거나 험한 곳을 찾기 일쑤다. 몸을 힘들게 함으로써 머리를 맑게 비우고,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담겠다는 생각에서다.

2. 출발지는 보리마당, 입구에 풀이 무성하여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좋았다. 오랜만에 없는 길을 만들어가거나 우거진 수풀을 헤쳐가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고단함이 클수록 즐거움도 크다. 등산로의 흔적은 분명했으나 최근에 사람이 다닌 적이 별로 없고, 여름이어서 더 그랬는지 길은 원시림처럼 풀과 나무들이 무성했다. 게다가 억새와 가시넝쿨이 많고 풀이 짙어 발목을 감아서 걷기가 쉽지 않았다. 가시가 종아리와 팔을 찔러서 쓰렸다. 그래도 즐겁게 걸었다.

멀리 하늘이 보이고 그 아래로 바위가 보였다. 오산, 일명 까마귀산이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그 아래로 다랑이논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오산에 오르니 한동안 그냥 머물고 싶었다. 문득 바위 아래 절벽으로 뛰어내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영화 <와호장룡>에서 여주인공 장쯔이가 ‘무당산으로 가거라’라는 말을 하고는 투신하는 장면이 있다. 분명 슬퍼야 하는 장면인데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하강 후 구름 속으로 사라진 장쯔이, 구름에 가렸기 때문에 아름다운 게로구나. 오산 정상에는 작은 돌탑이 있다.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여기까지 이어졌구나.

▲ 산길에서 만난 돌탑
▲ 산길에서 만난 돌탑

청산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 대봉산으로 가는 길은 온통 수풀이어서 길을 잘 알 수가 없었다. 겨우 길을 찾아가는데, 엉겅퀴에 억새와 가시넝쿨이 많아서 걷기가 쉽지 않다. 얼마를 걸었을까. 전화가 왔고 전화를 받으면서 주변을 살폈더니 아뿔싸! 내가 가야 하는 길 가운데 풀 사이로 뱀이 보이는 게 아닌가. 제법 큰 뱀이었는데 까치살모사 같았다. 통화가 없었으면 그냥 걸었을 것이고 분명 저 뱀을 밟았을 것이다. 까치살모사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뱀 중에서 독이 가장 세다. 순간 섬뜩했다.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수풀이 우거져서 바닥을 볼 수가 없으니 뱀에게 물리기 쉬운 곳이었다. 우선 눈앞에 있는 뱀부터 치워야 갈 수 있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겨우 스틱으로 뱀을 치우고는 바닥을 확인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내달렸다.

이윽고 대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바람이 많이 불었다. 긴장으로 인한 식은 땀을 닦고 물과 볶은 검은콩으로서 허기를 채웠다. 이젠 대성산으로 가야지. 여전히 가시넝쿨이 많아서 걷기가 힘들었다. 몸을 힘들게 하여 마음을 맑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등산이 긴장으로 정신이 더 피곤해지고 있었다. 대봉산을 지나 대성산으로 가는 길에서 산성 터 돌담 사이로 다시 뱀을 만났다. 다행히 가는 길에 머물러 있지 않고 돌 틈으로 사라져주어서 고마웠다. 만나기 힘든 까치살모사를 하루에 두 번이나 만났으니 이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헷갈렸다. 다만 긴장은 늘고 걷고 싶은 마음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다. 대성산에 올랐고, 더는 걷고 싶지 않아서 대선산을 포기하고 청산중학교로 하산했다.

3. 조선 영종 때 장한철이 쓴 <표해록>을 보면 그가 풍랑을 만나서 청산도에 잠시 머문 기록이 있다. 장한철은 제주도 애월 출신의 향반인데, 과거 시험을 치기 위해 한양으로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서 오키나와에 표류했다가 운 좋게 돌아오는 길에 청산도 인근에서 다시 풍랑을 만나서 일행 대부분이 죽고 겨우 몇 사람만 살아남아서 청산도에 표류했다.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이때 그는 청산도 무당의 딸, 젊은 과부 조씨와 사랑을 나눈 적이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장한철이 한양으로 과거 길을 떠나는 바람에 끝이 났다. 과부 조씨는 5년 기한으로 장흥에 나가서 장한철을 기다린다고 했다. 이후 4년 뒤에 과거에 급제한 장한철이 그녀를 다시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표해록>에 기록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조선 시대 같지 않아서 일부를 올려본다. ‘그녀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가 앉는다. 처음에는 엄숙한 말로 준절히 거절하는 것이 도무지 용납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나의 은근한 이야기를 듣고는 추파를 굴리는 듯하더니 이야기하는 품도 점점 누그러진다. 혹은 수줍어하며 교태를 보이기도 하고 혹은 짐짓 노한 것처럼 했다.…’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오늘의 산행코스 : 보리마당→오산→대봉산→대성산→청산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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