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화첩-울산의 풍경과 삶]옹기의 질박한 아름다움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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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화첩-울산의 풍경과 삶]옹기의 질박한 아름다움에 반하다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2.09.06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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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삶에서 옹기만큼 생활에 필수적인 품목은 없다. 전통적으로 옹기는 음식을 담고 저장하는 용기였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옹기의 ‘옹(甕)’은 그릇 형태를 뜻하는 ‘독’의 우리말 한자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옹기는 유약을 입혀 만든 질그릇을 총칭한다. 질그릇의 형태와 쓰임이 다양한 생활 용기로 발전함으로써 옹기란 말이 일반화 됐다. 옹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주로 남성들이었지만, 옹기가 음식문화와 밀접히 관계됨으로써 옹기 사용자는 가족의 살림살이를 도맡았던 어머니였다. 따라서 옹기는 어머니의 생활상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박재삼 시인의 ‘추억에서’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에서는 생활의 어려움과 설움에 흘린, 어머니의 눈물을 달빛에 비친 옹기에 비유했다. 여기서 옹기는 가난이 얼비친, 어머니의 한이며 삶이다.

이와는 달리 이영필 시인의 ‘어머니의 장독대’에 나오는 “숯, 고추 금줄 내걸어/ 조선 장맛 익히셨다”와 “곰팡이 푸른 역정 왕소금 분을 삭이며/ 발효의 시간 끝에서”란 구절에는 장독대와 장독에 담긴 어머니의 정성이 드러나 있다. 장독에 숯과 붉은 고추를 넣는 것은 숯처럼 검고 고추처럼 붉은 장 빛깔(맛깔나는 장)을 바라는 마음이다. 특히 붉은 고추는 푸른색과 더불어 잡귀가 싫어하는 밝은색이어서 우리의 조상들은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었다. 잡귀가 먼저 장맛을 보면 장맛이 변한다는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행위다. 장에 푸른 곰팡이가 생길 때는 왕소금으로 제거한다. 이처럼 장독에는 어머니의 생활이 담겨 있다.

발효식품을 저장하고 있는 장독대는 옹기의 멋과 맛을 보여주는 집합소다. 장독대는 일반적으로 부엌과 가까운 뒤뜰, 지면보다 약간 높은 곳에 있다. 장독대는 사방을 돌로 단을 쌓아 높게 하고 사방에 굄돌을 받쳤다. 가운데 작은 돌을 깔았다. 장독대는 양지바르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있었다. 장독대에서 간장이나 김장 따위를 담은 큰독은 뒤쪽에 한 줄로 서너 개 또는 네다섯 개를 놓고, 그 앞에는 고추장이나 젓갈 따위를 담은 중두리(큰독보다 조금 작고 배가 부른 독), 중두리 앞에는 작은 독을 여러 개 놓고, 작은 독 앞에는 자그마한 항아리를 놓았다.

옛 장독대의 독과 항아리 속에는 자연의 맛과 어머니의 손길이 배인 발효식품이 채워져 있었다. 산업화 이후 옹기에서 나온 음식을 먹고 자란 자식들이 도시로 몰려가고, 장독대 주변을 정갈하게 하고 독과 항아리를 정성스럽게 닦던 우리 어머니의 세대가 떠나면서, 장독대는 점차 멋과 맛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도시 장독대는 냉장고와 딤채로 대체됐다. 옹기의 특징인 살아 숨 쉬는 통기성을 상실한 인공식품들은 어머니의 손길 대신에 자본의 손길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의 생활과 환경, 음식 등이 자연성을 잃을 때 우리의 몸은 병들고 마음은 망가지기 시작한다. 자연성은 순환하는 환원성이다. 오늘날 현대문명이 훼손한 인간성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옹기의 특성인 환원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흙이 물과 불, 바람을 만나 빚는 옹기는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환원성이 있다. 환원성은 순환하는 힘이며 자연성을 소생시킨다. 자연성의 소생은 인간성 회복의 다른 이름이다.

외고산 옹기마을은 국내 최대 옹기 생산지이면서 옹기와 관련된 문화유산을 모아놓은 민속 마을이다. 나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옹기의 행렬을 따라 아래쪽 마을안내센터를 먼저 둘러보고 옹기가마를 살펴보면서 옹기아카데미관에 이른다. 옹기아카데미관은 옹기의 제작과정과 쓰임새를 직접 체험하고 배우는 곳이다. 다음은 옹기의 역사, 문화, 미래를 전시하는 울산옹기박물관이다. 이곳은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돼 있으며, 1000여 점의 도기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옹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전시한 공간이다. 세계 최대의 옹기도 이곳에 있다. 발효·숙성·저장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발효아카데미관을 지나면, 옹기 모양 화장실이 있는 곳이 옹기마을 공원지구다. 공원은 장독대가 조성돼 있고 길은 옹기 사이사이에, 옹기의 둥근 선처럼 놓여 있다. 공원 길을 나오는 곳에 울주민속박물관이 있는데, 옛 풍속과 생활기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한나절을 둘러 보았다.

외고산 옹기마을은 옹기의 질박한 아름다움이 그윽하게 빛나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숨 쉬는 옹기처럼 수수해진다. 옹기마을에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머물다 간다. 그 순간, 우리는 옹기처럼 흙에서 자라 흙으로 돌아가는, 흙의 자식임을 깨닫는다.

그림=최종국 한국화가 글=문영 시인

(※QR코드를 찍으면 간단한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은정 인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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