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문답]초심자도 가뿐한 코스…아기장수 전설 품은 정상 바위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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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문답]초심자도 가뿐한 코스…아기장수 전설 품은 정상 바위 장관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2.09.2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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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봉산은 낮은 산이지만 멀리 무룡산과 토함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황금색 가을 들판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울산과 경주 사이에 모화리와 입실리가 있다. 둘 다 경주시 외동읍에 속한다. 외동은 경주의 동쪽에서 제일 바깥쪽이라는 뜻이다. 입실과 모화는 모두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신라 때 불국사와 모화리의 원원사 사이에 작은 절 78개가 있었는데, 절과 절 사이가 마치 복도와 같았다고 한다.

불국사에 들어갈 사람은 미리 이곳의 작은 절에 들어와서 삭발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는데 불도를 닦으러 오는 사람들이 실내로 들어오는 문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 입실(入室)이다. 모화는 이때 불가에 귀의하기 위해서 삭발하고 머리털을 불태운(毛火) 다음 불국사 안으로 들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입실과 모화 사이에 작은 산이 하나 있다. 해발 236m 정도 되는 산이어서 산꾼들이 잘 지나치는 산이다. 아기봉산 또는 애기봉산이라고 하는데, 산치고는 매우 낮은 편이지만, 정상에 있는 바위는 바위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봉우리다. 마치 작은 설악산을 보는 듯 규모가 대단하다고들 한다.

아기장수가 두개의 줄을 이용해 바위를 멨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
아기장수가 두개의 줄을 이용해 바위를 멨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

산행의 출발점인 수곡사가 이미 해발 100m 정도 되기 때문에 150m도 채 올라가지 않아도 정상에 다다를 수 있어서 초심자에게도 부담 없는 산이다. 일반적으로 수곡사에서 출발하여 건국사 쪽으로 내려오는데, 이렇게 한 바퀴 돌아보는 길이가 3.2㎞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도 오르고 내릴 때 전망은 좋고 정상부근의 거대한 바위들이 멋스러움과 긴장감을 함께 불러 주어 좋다.

산 이름이 아기봉산인 까닭은 산의 정상에 ‘아암(兒巖)’이라는 기암괴석이 있는데 이 바위와 관련한 전설 때문이다.

‘아주 옛날 선녀가 임신하게 되어 하늘나라에서 쫓겨나 이곳으로 내려와 바위 위에서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태어난 지 삼칠일(21일)만에 일어나서 걸으며 말을 하고, 석굴 앞에 있는 바윗돌을 밧줄로 묶어 짊어지고 동몽산 꼭대기에 갖다 놓기를 반복하며 힘을 길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임금은 장차 이 아이가 임금 자리를 위협하게 될 것을 우려하여 군사를 시켜 아이를 없애버릴 것을 명하였다.

아기봉산 정상 부근의 거대한 바위들은 멋스러움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아기봉산 정상 부근의 거대한 바위들은 멋스러움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군사들이 아이를 죽여 끈으로 묶고 포대기에 싸서 시체를 들고 가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하고 우르릉 꽝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군사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아이 시체를 버려두고 모두 도망쳤다. 놀라 깬 선녀는 돌로 변한 아이의 시체 위에 엎드린 채 죽고 말았다. 그 뒤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 봉우리를 ‘아기봉’이라 불렀으며,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이 바위에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아기장수 이야기’라고 하는데 전국에 많이 전한다. ‘아기장수 이야기’는 현실적인 억압과 불합리에 항거하려다 패배하고 마는 비극적인 영웅 이야기로, 비극적인 영웅의 좌절이 현실의 불합리와 모순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아기장수가 그보다 앞선 세대에 의해 집단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살해당한다는 점에서, 또한 때때로 살해의 주체나 배후가 기존의 기득권 세력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현실에 대한 반항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억압받고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당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담는 인물이 바로 아기장수인 것이다.

아기봉산 정상 부근의 거대한 바위들은 멋스러움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아기봉산 정상 부근의 거대한 바위들은 멋스러움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수곡사주차장 왼쪽 끝에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수곡사에서 아기봉산을 오르다 보면 무덤이 많이 보인다. 풍수가 좋은 곳인가 생각했다. 가족묘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작은 개울을 건너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나무다리를 건넌다. 20분 정도 걸으면 태평사 이정표를 지나 능선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애기봉은 오른쪽이다.

아기봉산 산길은 완만한 능선길이지만, 마사길이 많아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구어리 갈림길이 나오고 잇달아 건국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아기봉은 그냥 직진한다.

운동기구가 놓인 삼거리에서 쉬었다. 맥주 반 캔을 마셨다. 일행 중 누군가가 준 삶은 땅콩과 포도와 사과 등으로 입가심했다. 몇 종의 맥주를 제외하고는 맥주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이날의 맥주는 시원했다.

간밤에 글 쓴다고 잠을 제대로 못 잔 데다가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에 답답함이 깃든 것도 한몫했다. 뜬금없이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백거이의 <도주민>이라는 한시가 생각났다.

‘도주에는 난쟁이들이 많은데/ 키가 큰 사람도 삼척이 되지 않네/ 관청에서 난쟁이를 매년 공물로 진상하니/ 이를 도주 임토공(任土貢)이라고 하네.’

도주는 중국의 후난성 경내에 있는 곳이다. <구당서>에 ‘도주 사람들은 대개가 키가 매우 작아서 매년 집집마다 난쟁이 남자를 공납하니 이를 왜노(矮奴, 난쟁이 노예)라고 불렀다.’라고 기록돼 있다. 백거이는 사람이 지방의 특산품으로 둔갑해 사랑하는 손자와 아들을 떠나보내는 노인과 어미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을 생이별시키는 공납제도의 잔인함을 고발했다. 사람이란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가. 권력자의 이기적 욕망이 불러온 참상을 이야기한 ‘아기장수 이야기’ 또한 얼마나 잔인한가. 산은 이리도 시원한데, 인간의 삶은 어찌 그리도 갑갑한 게 많은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아기봉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과 산비탈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많다. 아기봉 가기 직전에 정상을 알리는 코팅지가 나무에 걸려 있는데, 실제 정상은 아기봉이라 표기된 아암이다. 이윽고 도착한 아기봉, 이정표 오른쪽으로 나가면 전망대다. 시계 방향으로 봉서산, 삼태봉, 무룡산, 묵장산, 마석산, 동대봉산, 토함산이 차례로 보이고 발아래로 외동읍의 가을 황금 들판이 펼쳐진다. 전망대 뒤쪽에 놓인 바위는 양쪽에 2줄의 홈이 파였는데, 전설의 아기장수가 두 개의 줄을 이용해 바위를 직접 멘 자국이라고 한다. 이 일대 다른 바위에선 아기를 씻겼다는 돌 대야 형상도 보인다.

이정표에서 오른쪽 건국사로 하산했다. 왼쪽은 연안·냉천 방향. 곧 나오는 연안리 갈림길에서 오른쪽 건국사로 꺾어 조릿대 길을 내려가면 된다. 이윽고 나오는 건국사, 오늘 산행의 종착지이다.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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