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문답]설렘과 긴장…드넓은 억새밭과 암릉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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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문답]설렘과 긴장…드넓은 억새밭과 암릉구간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2.11.10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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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문에서 배바위 쪽을 올려다보니 햇살 맞은 억새가 은빛 찬란하다. 동문에서는 억새를 더 가까이서 즐기기 위해 산성을 가로질러 서문으로 갔다.

1. 화왕산은 경남 창녕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창녕의 진산이다.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옛날에는 불뫼 또는 큰불뫼로 불렸다. ‘빛벌’ 또는 ‘빛불’로 풀이되는 창녕의 옛 이름들인 불사(不斯) 비화(非火) 비사벌(比斯伐) 비자화(比自火) 비자벌(比子伐) 화왕(火王) 등이 모두 화왕산의 옛 명칭인 ‘불뫼’와 무관치 않다. ‘화왕(火王)’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당시의 비사벌군(또는 비자화군)을 ‘화왕군’이라 불렀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현재는 임금 ‘왕(王)’자가 아닌 성할 ‘왕(旺)’자를 사용하고 있다. <선조실록> 1598년(선조 31)에 처음으로 ‘화왕산(火旺山)’이라는 기록이 보이는데, 그 이후로 두 글자를 혼용하여 사용하다가 ‘1872년 지방지도’ 이후부터는 ‘왕(旺)’자만 사용했다.

▲ 화왕산은 경남 창녕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옛날에는 화산활동이 활발해 불뫼 또는 큰불뫼로 불렸다.
▲ 화왕산은 경남 창녕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옛날에는 화산활동이 활발해 불뫼 또는 큰불뫼로 불렸다.

2. 화왕산을 오르는 코스는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옥천리 관룡사에서 오르는 것과 옥천리 자하곡에서 오르는 것이다. 예전에는 관룡사에서 두 번 오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자하곡에서 올랐다. 자하곡에서 오르는 길은 다시 3개가 있다. 1코스로 올라서 3코스로 내려오기로 했다. 실제로 걸은 코스는 ‘자하곡매표소~산림욕장~자하정~장군바위~비들재갈림길~배바위~남문~창녕조씨득성비~동문~서문~화왕산 정상~바위쉼터~도성암~자하곡매표소’이다. 전체 거리는 대략 7.5㎞, 산행 시간은 점심시간 포함 여유롭게 5시간 정도였다.

상대적으로 1코스가 조금 힘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암릉 구간이 많아서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암릉 구간은 위험한 면도 있지만 그만큼 긴장과 설렘을 가져다준다. 밧줄을 잡고 오르는 것도 좋다. 1코스에는 수시로 밧줄 잡는 곳이 있다. 장군바위를 지나니 멀리 억새로 가득 찬 화왕산성이 보인다. 까마득히 정상 표지석 앞에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언제 저곳까지 가려나 싶다. 다시 바위를 탔다. 오랜만에 긴장이 가져다주는 쾌감이 느껴졌다. 자하정에서 비들재갈림길까지는 쉼터가 없지만, 곳곳의 너른 바위가 천연의 쉼터다.

오늘의 산행코스
오늘의 산행코스

오를수록 바람이 심하다. 써늘했지만, 뭔가 마음이 탁 트이며 시원해지는 느낌에 왠지 모를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윽고 도착한 곳 곰바위다. 그 옛날 화왕산 아랫마을에 사나운 곰 한 마리가 나타나 마을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은 이름난 포수를 찾아가 곰을 잡아주기를 부탁했고 곰은 포수에게 쫓기게 됐다. 화왕산 정상으로 달아난 곰은 숨을 곳을 찾았지만, 주변은 온통 억새뿐 숨을 곳이 없었다. 뒤따라 온 포수를 발견한 곰은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어 바위로 변해 버렸다.

곰바위에서 점심을 하고는 동문을 향해서 출발했다. 남문 가기 전에 만난 배바위, 2009년 2월9일 정월 대보름, 화왕산 억새태우기축제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행사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이 갑작스러운 화재로 인해 불길에 휩쓸려 부상했거나 불길을 피하려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서 죽은 곳이다. 배바위 위에 올라서니 아찔하다. 배바위부터는 억새 천지다. 남문에서 배바위 쪽을 올려다보니 햇살 맞은 억새가 은빛 찬란하다. 동문에서는 억새를 더 가까이서 즐기기 위해 산성을 가로질러 서문으로 갔다. 날씨는 더웠지만, 자연으로부터 다가오는 감동을 어찌하지는 못했다.

3. 600m 지대에 화왕산성이 있다. 화왕산성은 지형을 이용해 쌓았기 때문에 성벽의 높이를 낮은 곳은 높고, 벼랑 쪽은 낮게 해서 경사가 완만하다. 동·서 두 곳에 성문이 있었는데, 서문은 거의 자취가 없고 동문만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성벽의 형태가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동문 근처에서 남쪽 봉우리로 이어지는 성벽이다. 화왕성은 지형과 지세를 십분 이용하면서 쌓았기 때문에 경사가 상대적으로 완만하고 낮은 곳은 성벽이 높고, 벼랑이 이어지는 남북의 두 봉우리로 갈수록 성벽은 낮다.

언제 성을 쌓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창녕사람들은 대체로 비화가야 때 쌓은 것이라고 말한다. <세종실록> ‘지리지’를 보면, “화왕산성은 둘레가 1127보이고 그 안에 샘이 아홉, 못이 셋 있으며 또 군창(軍倉)도 있다”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화왕산 고성은 석축산성으로 둘레가 5983척이나 지금은 폐성이 되었다. 안에 샘이 아홉, 못이 셋 있다”라고 되어 있다. 지금 아홉 개의 샘은 찾을 길이 없지만, 세 개의 못은 그대로 있다. 그 못에는 창녕 조씨가 성을 얻게 된 내력이 담긴 전설이 전하여 온다.

신라 때 한림 벼슬을 하던 이광옥에게 예향이란 딸이 있었다. 예향은 뱃병을 앓았는데 백약이 소용 없었다. 어떤 사람이 이르길 “화왕산의 못이 영험하니 만약 거기서 재계하고 기도하면 효험을 보리라” 했다. 그 말대로 기도를 하는데 문득 구름과 안개가 앞을 가려 예향이 간 곳을 알 수 없더니, 이윽고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풀리며 못 속에서 솟아올랐다. 뒷날 병은 나았고 수태까지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겨드랑이 밑에 ‘曺’(조)라는 글자가 있었다. 어느 날 밤 한 사나이가 나타나 “그대는 이 아이의 아비를 알겠는가? 옥영(玉瑛)이 그 이름이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광옥이 이런 연유를 임금께 아뢰니, 임금은 예향의 아들에게 ‘조’씨 성을 하사했다. 산성의 동문 근처에 1897년에 세운 ‘창녕 조씨 득성비(得姓碑)’가 서 있다.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화왕산성은 정유재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밀양 영산 창녕 현풍 등 네 고을의 군사를 거느리고 왜장 카토 기요마사로부터 지켜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울산의 의병들도 화왕산성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화왕산성은 성의 기능을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대신 봄에는 진달래꽃으로 가을에는 억새꽃으로 사람들을 부르는 역할을 한다. 화재의 기억은 점점 사라질 것이고, 억새는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계속 필 것이다. 다만 나는 어느 해에 다시 화왕산의 억새를 또 찾을 수 있을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서 창녕시장에서 수구레국밥에 소주 한 잔을 마셨다. 나른했다. 그냥 행복했다.

송철호 울산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어리버리산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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