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센터 지정 60주년 맞은 울산 ‘문화도시’ 옷 입는다]방치된 정미소·공장이 개성만점 창작문화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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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센터 지정 60주년 맞은 울산 ‘문화도시’ 옷 입는다]방치된 정미소·공장이 개성만점 창작문화공간으로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2.12.01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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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모어에서 취미반 등을 위해 마련해 놓은 도구들.

울산에는 용도를 잃고 오랜 시간 방치됐던 산업시설을 문화가 흐르는 공간으로 바꾼 장생포문화창고가 있다. 장생포문화창고는 공공기관이 세창냉동창고를 리모델링 후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민간에서도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 수년간 방치됐던 정미소(精米所)와 화학약품 공장·창고가 지역민에게 일용할 문화의 양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그동안 문화적으로 소외됐던 사람들이 문화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을 비롯해 지역 활성화도 이뤄지고 있다.
 

▲ 비모어에서 작가를 꿈꾸는 수강생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 비모어에서 작가를 꿈꾸는 수강생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울주군 두동면 ‘미소 갤러리’

지역민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던 옛 정미소가 문화의 양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울산 울주군 두동면 은편리에는 수십 년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정미소가 멋진 갤러리로 만들어진 곳이 있다. 은편정미소는 1975년 만들어져 주변에서 수확된 벼 도정을 책임졌다. 하지만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뒤를 이어 자리 잡은 것은 고물상. 슬레이트 지붕 곳곳은 구멍이 나고, 물이 고인 바닥엔 잡동사니가 쌓여 폐가나 다름없었다.

이곳에 갤러리를 만든 이는 서양화·설치미술·공간디자인·조경관리 등으로 경계 없이 활동하는 이상한 작가다. 새 작업실을 찾던 이 작가는 너른 마당에 정미소 건물까지 있는 이곳을 최적의 공간으로 선택했다. 처음엔 작업실로만 쓰려고 했지만, 정미소 건물과 마당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꾸민 문화 공간으로 꾸미기로 마음을 정했다.

방치됐던 건물은 조명이 달려 전시가 가능한 근사한 ‘미소 갤러리’가 됐다. 정미소의 부속건물은 사무실 겸 커피 한잔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특히 어느덧 갤러리 형태를 갖춘 이곳의 모든 집기는 바퀴가 달려 언제라도 내부 공간 변형이 가능하다.

▲ 울산 울주군 두동면 은편리에 있는 미소 갤러리 전경.
▲ 울산 울주군 두동면 은편리에 있는 미소 갤러리 전경.

동네 주민들도 미소 갤러리를 반긴다. 도로에서 보이던 버려진 고물상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에서 카페 분위기를 연상하는 문화공간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실제 마을 주민들은 동네 마실 삼아 갤러리에 들러 커피 한잔하기도 하고, 집에 놀러 온 손님에게 자랑스럽게 갤러리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상한 작가는 “처음에는 뭐 하는 공간인가 궁금해했던 사람들이 마을에 문화공간이 생겼다는 점에 자부심을 가진다”며 “최근 작업한 ‘글라스 하우스’의 제작과정도 유심히 살펴보며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이 작가는 이곳을 단순한 갤러리나 작업공간이 아닌 모두에게 열린 문화공간으로 만들 뜻도 내비쳤다. 너른 마당의 작업공간에서 기존 작가들과 협업으로 작품도 만들고, 미술 수업도 진행할 생각도 있다.

이 작가는 “미술 입문 수업이 고전 작품의 이해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미술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현대미술부터 시작해 고전으로 넘어가는 수업도 생각하고 있다”며 “작가의 작업실이 고독한 창작의 공간이 아닌, 누구나 들어와 차 한잔하며 대화할 수 있는 장소로 꾸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미소 갤러리의 또 하나의 자랑인 조명. 커피전문점 테라로사에서 사용하던 전등을 달았다.
▲ 미소 갤러리의 또 하나의 자랑인 조명. 커피전문점 테라로사에서 사용하던 전등을 달았다.

◇남구 삼산동 ‘비모어’

화학약품 공장과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이 복합문화공간 ‘비모어’(Be more)로 단장했다. 음식점과 공업사가 모여 있는 울산 남구 삼산동에 있는 이곳은 이보미 대표가 큰 뜻을 펼치기 위해 만든 장소다. 지난 2018년 중구 중앙동 문화의거리에 화실 겸 작업실을 운영하던 이 대표는 많은 예술인에게 창작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2020년 2월 큰 장소로 이동했다.

비모어는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되던 2020년 문을 열었다. 울산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이 대표는 넓은 공간을 알차게 활용하기 위해 임시 가설물을 설치하고, 7m에 달하는 천장까지 직접 꾸몄다. 예전 공장의 분위기를 남기기 위해 정문 미닫이문과 호이스트(크레인)는 남겨뒀다.

이곳에서는 작가 지망생을 위해 창작 지원 공간과 함께 멘토링을 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물론 취미로 미술을 배우려는 시민을 위해 쉽고 편하게 그림을 배우도록 취미 미술반도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넓은 공간에서는 전시와 공연 등으로 활용한다. 게다가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분위기를 살려 영상 촬영 장소로도 쓰였다.

이 대표는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첫 개인전을 열었던 영상아트 갤러리의 분리된 전시 공간이 인상 깊어서, 비모어도 별도의 작품 전시 공간을 빼놓았다”며 “이 공간을 제외하고는 창고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며 언제라도 가벽을 세워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특이하게도 비모어는 별도의 홍보를 하지 않는다. 울산의 문화공간을 발견해 내는 ‘보물찾기’의 즐거움을 빼앗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 대표의 지론이다. 이 대표는 “혼자 새벽까지 공간을 꾸미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어 포기도 생각했지만, 완성된 공간을 바라보고, 비모어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보람을 느낀다”며 “올해까지는 생활미술에 중점을 뒀다면, 내년엔 전업 작가를 위한 기획도 세워 새롭게 도약한 비모어가 되도록 노력할 생각이다”고 다짐했다.

전상헌기자 honey@ksilbo.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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