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시 울주군 구량리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 태풍 ‘매미’ 피해를 입고 외과수술을 마치고 난 후였다. 큰 가지 2개가 부러지면서 나무모양이 망가진 상태라 국가문화재로서 관리하는 것보다는 지방문화재나 보호수로 관리하는 것이 어떠냐는 연락이 왔었다. 역사 문화적 가치로 보아 해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런데 해제가 안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해제를 검토하던 중에 나무 주변 논 중에 문화재구역으로 사 놓은 땅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땅을 찾고 난 뒤 서편에는 후계목이 될 은행나무들을 심었고 북쪽 부지는 농사를 중단시켰다. 미리 사둔 땅들이 천연기념물로서 지위를 지키는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그렇다고 천연기념물 해제 위험이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무가 차지한 공간은 늘었는데 뿌리를 뻗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뭇가지와 뿌리는 대칭이다. 나무의 상태를 살필 때 나뭇가지를 보면 뿌리의 상황도 알 수 있다. 구량리은행나무 가지들은 경계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더 짧게 뻗은 북서쪽 아래를 보면 물이 고여 미나리가 자란다. 가지는 점차 마르고 잎도 아주 작은 편이다. 밑둥에서는 자꾸만 작은 가지들이 올라온다. 뿌리가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추측건대 1980년대 농경지정리를 하면서 은행나무 주변에 있던 연못을 없애는 바람에 그 연못으로 들어가던 물들이 나무 주변으로 모이는 것은 아닐까 한다.
은행나무는 물이 필요하나 과하면 뿌리가 숨을 못 쉬어 썩게 된다. 물을 빼주는 배수장치가 필요하다. 물로부터 건져내야할 국가문화재는 가까이에 또 하나가 더 있는 셈이다. 부랑자가 지른 화재를 주민들이 흙을 채워 진화해 살려낸 은행나무도 이젠 물로부터 건져내야 한다. 멋진 수형을 가진 천연기념물이 인근 주민들에게 수익원이 되기도 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윤석 울산시 환경정책과 주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