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35)]생명에 필요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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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35)]생명에 필요한 자유
  • 경상일보
  • 승인 2022.12.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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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집은 울창한 대숲이 뒷담 역할을 했다. 여기에는 사계절 새소리가 들리고 크고 작은 새들이 둥지를 만들어 어린 새끼들을 길렀다. 동물에 대한 사랑이나 생명이 누리는 저마다의 자유를 알지 못했던 철부지는 둥지에 깃들인 새를 잡아 키워보고 싶었다. 야생의 새가 철사로 만든 작은 우리 속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퍼덕이는 새를 감당하지 못해 날개를 묶어 놓았다. 그러나 어떤 곡식도 먹기를 거부하는 새를 결국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기가 한 행동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자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예사로 새를 잡아 구워 먹던 시절에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서 퍼덕이던 작은 새의 모습을 잊지 못하는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부끄러운 유년의 기억을 최근 방송에서 보도된 노인 요양원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다시 떠올리고 말았다. 침대에 손과 발이 묶인 노인이 결박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날개가 묶인 채 작은 우리를 벗어나려고 퍼덕이는 새의 모습을 연상하는 일은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그 두 모습에서 느끼는 분노와 부끄러움은, 크기는 다르지만 생명체가 누려야할 최소한의 자유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철없는 나이라고는 하지만 새를 길러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날아다니는 새의 날개를 묶어 우리에 가두는 일은 잔인한 일이다. 날아다니는 새의 날개는 그 새의 생명이자 자유이기 때문이다.

요양원에서 연약한 노인의 사지를 결박한 이유가 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피부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사지를 결박하는 것밖에 없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한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자유와 노인의 건강을 위한 치료사이의 경중을 판단하는 일이 온전히 관리자인 요양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어린 아이가 작은 새가 누리는 자유의 의미를 알 수 없었듯이 요양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심정을 헤아려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여러 노인들을 집단적으로 보살피는 일들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정신이 희미해진 노인들의 요구를 일일이 헤아린다는 것은 다수의 안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맞이할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 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후손들의 일임에 틀림이 없다. 지금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유지될 수 있는 초라한 육신이지만 그들도 이 땅 위에서 한 생애를 힘들게 살아낸 지난날의 주인공들이다.

쓸모가 없어지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달라야 한다. 허물어져 가는 육신이지만 가족과 자녀들에게는 자신들의 젊은 날을 온전히 기록하고 있는 살아있는 상징이고, 여전히 자신들과 삶을 일부분 공유하고 있는 정서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지켜준 부모들을 요양원에 보내놓고 한 달여를 눈물바람으로 보내는 막내딸을 주위에서 보았다. 90이 넘은 아버지를 요양원에 눕히고 나서 60이 넘은 딸은 아버지의 정신 속에서 자신이 서서히 지워지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어서 눈물로 아버지를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정을 깊게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일어나기 힘든 정서이다.

요즈음은 부모를 요양원에 맡긴 가정이 한집 건너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며 자신은 절대 겪지 않을 일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생산적인 복지라는 말이 설득력을 더해가는 시대에 노인복지를 강조하는 일은 쉽지 않는 일이다.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생산적인 노인복지일 것이다. 영양가 높은 음식이나 효과 빠른 치료제가 이것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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