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미국이 국가전략보고서를 발표했다. 매년 하는 것은 아니다. 근래에는 2010년, 2015년, 2017년에 발표했고 그 이후에는 2021년, 2022년에 잇달아 발표한 것으로 보아 전략의 수정 변경이 현저하게 필요했던 모양이다. 세상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국가전략보고서는 Goldwater - Nichols Act(법)에 근거해 작성한다. 48쪽으로 된 이 보고서는 미국이 당면한 사정을 밝히고 바이든 행정부가 이 세계의 리더로서 해야 할 일과 또 자유민주주의를 사수하고 미국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결론은 딱 한 바닥이다. 미국은 초강대국 간의 탈냉전 경쟁과 기후 변화에서 세계 보건 문제에 이르는 초국가적 도전이라는 두 가지 전략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한다. 그러면서 각 분야별로 강한 미국이 되기 위한 문제를 파악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나 기업이나 가정도 안보가 우선이다. 불안하면 안 되는 것이고 살아남아야 하는 것. 그러려면 우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 처방한 국가안보전략은 미국이 강력해져서 나쁜 대국들이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방들과 연대해야 한다. 내가 갖는 의문은 하룻강아지인지, 천둥벌거숭이 같은 푸틴을 귀싸대기 하나 후려치지 못하고 핵무기를 쏠지도 모른다며 겁을 주는 이 미치광이를 보고만 있어야 할 일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는 사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시민과 군인들이 죽고 고통을 받았는가? 푸틴은 천벌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일대일로를 열고 일장춘몽 같은 중국몽을 꾸는 욕심꾸러기를 또 어찌해야 할까? 인구가 많아 큰 시장이라서 멀리 할 수도 없는 이웃이지만 북한과 양다리를 걸치니 우리 편은 아니다. 남 걱정 말고 우리 집안이라도 잘 살게 해 달라는 미국 사람들의 요청 또한 강하다. 이런 사정인데 미국이 세상일을 다 걱정하고 책임지기에는 버거우리라는 생각이다. 연방준비제도는 며칠 전 빅 스텝인 0.5%의 금리를 올렸다. 소비자물가지수가 7.1% 상승해 예상보다는 약간 낮아서 안심했기에 그 정도 올린 것이라는 것, 소비자 물가가 쑥 내려갈 때까지 금리를 올릴 것이라 하니 2023년에도 계속 올리면 한미 금리차가 커져 우리도 또 이자를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계속 오를 금리에 서민들이 어찌 살까 걱정이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 바로 잘못이라는 ‘과이불개(過而不改)다. 영국의 콜린스사전은 ‘퍼머크라이시스’(permanent+crisis, 영구적 위기)로 정했다. 장기간에 걸친 불안정과 불안이란 의미이고 미국의 미리엄웹스터사전은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제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고 선동하는 행위’라는 뜻의 ‘가스라이팅’을 골랐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는 커녕 “기분 나빴다면 유감”이라 표현하는 것이 가스라이팅의 좋은 보기다. 우리가 지겹도록 보고 있지 않은가? 영국의 옥스퍼드사전은 ‘고블린(Goblin) 모드’라고 발표했는데 덩치가 작고 사악한 도깨비의 고블린 모드는 불안과 피로에 지친 일상에 나태하고 방종하게 사는 ‘포기하면 편해’ 식의 무기력한 태도를 말한단다. 올해의 단어가 아니라 한 동안 이 시대를 대표할 단어는 단연코 ‘내로남불’일 것이다. 언제쯤이면 이런 일이 부끄러웠던 과거가 될까?
국제 경쟁에서 우리는 얼마나 경쟁력이 있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미중소일의 틈바구니에서 북한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미국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말이다. 세금 받아 나눠 쓰는 예산안도 제때에 합의하지 못하는 나라가 무슨 경쟁력이 있겠나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어제도 오늘도 네 탓만 하고 있다. 영하 10℃의 강추위에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외치는 군중들, 국론이 어찌 이리 분열되어 있을까.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보아야 하나?
‘강 건너 등불’은 가수 정훈희가 부른 노래다. “그렇게도 다정했던 그때 그 사람, 언제라도 눈감으면 보이는 얼굴,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사람 중에….” 그 사람을 잊지 못하고 운다는 ‘강 건너 등불’은 가족과 연인을 잃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절규하며 부르는 노래 같다. 우리는 이런 이별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안정되며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 이런 과제를 두고도 강 건너 등불 보듯 하나….
조기조 경남대 명예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