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수사가 증거를 따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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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수사가 증거를 따라 간다
  • 경상일보
  • 승인 2022.12.2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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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준 변호사·제55대 부산지검 검사장

현재 진행중인 검찰의 대장동사건 수사에 대해 수사대상자(잠재적 대상자를 포함) 등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식으로 반발하고 있다. 새로운 수사팀이 와서 과잉 조작 수사를 하고 있다는 취지다. 정치적 공세이지만 수사를 지나치게 희화화한 것으로 보인다.

혐의를 밝히는 공동피고인의 진술이나 증언을 두고 ‘회유, 압박, 답변 유도, 암시에 의한 것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변호인들의 발언도 보인다. 법정에서 해야 할 주장을 바깥에 드러낸 것으로 방어권 행사로 보기에는 어색하다.

과거 다른 사건에서 가끔 수사대상자가 편파수사, 먼지털이 과잉수사 또는 별건수사라고 하면서 수사기관을 비난하는 경우를 보아 왔지만 아예 수사 자체를 소설 창작으로 비유(!)하는 모습은 듣도 보지도 못한 광경이다. 기상천외한 발상이지만 진심으로 동조하는 세력도 상당하고 수긍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놀랍다.

통상 수사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작업이다. 검찰을 편들 생각도 없지만 창작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의 사건을 재현해 증거에 따라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범죄사실을 밝혀내 법을 적용하는 일은 딱딱하기까지 하다. 범죄를 밝혀내는 일은 증거 판단의 문제로 귀착한다. 혐의 입증에는 증거가 필요한데 아무리 창작력과 상상력을 동원하더라도 증거가 없다면 소용없다. 물론 집요하게 파헤치는 수사기관의 의지와 노력은 수사의 성패에 영향을 미친다.

법원에서 검찰의 공소가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하지만 이는 보통 사실 인정과 증거 판단에 있어 견해차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무죄 판단은 법관의 인격, 견식, 소양, 이성 등에 의존한 자유심증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마찬가지로 수사 절차 및 결과에 관한 처분이나 결정도 재판을 전제로 한 작업으로서 검사 역시 법관과 유사한 형태의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검찰권 행사는 준사법적 작용인 것이다.

법정의 증언이나 수사상의 참고인 진술을 회유나 압박, 답변 유도나 암시에 의한 것이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은 본질적으로 증언이나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고 있는 것이다.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물적 인적 증거 중에서 인적 증거인 증인 또는 참고인의 진술이 증거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부패사범이나 경제범죄의 수사에 있어서는 돈의 흐름이나 통화기록, 각종 자료나 문서 등의 물적 증거가 핵심이지만 관련자들의 진술은 매우 중요하다.

범죄를 둘러싸고 거짓말이 횡행하는 형사사법의 현실에서 거짓 왜곡된 주장을 걸러내고 신빙성있는 진술을 확보하는 일은 수사의 요체다. 범죄를 밝혀 내는 수사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사실을 술술 털어 놓는다면 쉬운 일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사담당자와 대상자간에 두뇌싸움은 물론 주장을 관철하고 상대를 설복시키기 위한 팽팽한 대립이 생긴다. 상호간에 의지력 다툼도 벌어진다. 수사담당자는 혐의자나 사건 관련자들이 사실을 말하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게 되는데 설득, 압박 등이다. 위법한 수단이 아니라면 회유, 유도, 압박, 암시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을 바로 배척할 수는 없다. 설득과 심리적 압박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고 증거를 찾는 수사방법은 유효하고 실효적이다. 결국 진술이나 증언은 물적 증거나 객관적 정황에 부합하는가에 따라 신빙성을 인정받게 된다.

과잉수사가 문제지만 축소 시늉 수사도 문제가 많다. 진실이 왜곡되고 범죄가 은폐되어 정의가 실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이 엄연함에도 수사를 소설 창작이라고 눙치거나 사실을 뒤늦게라도 밝히는 관련자들의 진술이나 증언을 회유 압박 암시 유도라는 이유로 무시할 수는 없다. 역동적이고 살아 움직이는 수사는 진행 상황에 따라 뒤늦게라도 드러나는 증거를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박기준 변호사·제55대 부산지검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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