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022년은 울산읍이 울산시가 된지 만 60년 환갑이 되는 해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2022년과 울산공업센터 개발이 시작된 1962년은 같은 임인년 호랑이해였다. 따라서 2023년 올해는 울산시가 된 후 두 번째 맞는 계묘년이다. 민선 8기 울산시정이 내세운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이라는 슬로건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다. 울산이 처음 ‘울산공업기지와 유울연락기지’로 기공식을 한 것이 1943년 계미년 5월11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022년 출범한 민선 8기 울산시정은 슬로건처럼 울산을 ‘새로 만드는’ 역사적 책무를 지니고 있다.
식민지 시기 일본제국에 의한 울산개발은 그들의 패전으로 중단되었고, 해방 후 우리 정부는 이 계획과 거의 유사한 울산공업센터 개발을 결정하고 1962년 1월27일부로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결정 고시했다. 이 때로부터 지금까지 환갑을 맞는 동안 울산은 대한민국 경제성장에서 참으로 큰 역할을 다해 왔다. 울산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다. 이는 오랜 연구 끝에 내린 필자의 결론이다. 한 나라의 운명이 한 가지 요인으로 결정되지는 않겠지만, 울산이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핵심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금의 울산은 지나간 영광에 젖어있기에는 제반 여건과 지표가 매우 부정적이다. 울산을 처음 특정공업지구로 설계하고 개발한 것이 중앙정부였기 때문에 지금의 어려움에 대한 가장 큰 책임 또한 중앙정부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 이유는, 초창기 울산개발이 ‘공업건설’에만 치중했고, 그 개발 주체가 정부부처였으며, 대통령의 최고 관심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울산은 외부의 힘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지난 60년간 울산이라는 도시공간을 왜곡시키고 올바른 발전기회를 빼앗아간 모습으로 확인된다. 초창기 국정과 시정 책임자들은 도시개발경험이나 관련지식이 없었고, 울산에 대한 장기비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행정 관료들은 수시로 울산 현장을 찾은 대통령이 쏟아낸 지시사항 이행에 급급했고, 울산에 투자한 재벌들은 토지 쟁탈전에 몰두하면서 도시공간에 상처를 더했다.
1943년에 첫 삽을 뜬 울산개발은 올해로 만 80년이 되었다. 이 첫 개발의 목적은 일본제국과 조선총독부 스스로가 “울산이 대동아 건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병참기지로서의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에 “울산 개발로 신흥도시를 창설해서 대륙수송로의 기지를 만들고 생산공업지대를 육성하여 국력을 증강”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1962년 우리 정부에 의한 울산개발 목적은, 그해 2월3일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현장에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읽어 내린 치사문에 잘 나와 있다. 박 의장은 “사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해 울산에 신생공업도시를 건설”하고자 하며, 이를 “자손만대의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적 궐기”라고 천명했다. 그리하여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 후 군사정부가 일본제국의 빛바랜 구상을 바탕으로 다시 그려낸 청사진에 따라 울산에서는 정유, 비료,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비철금속 등 국가기간산업이 착착 건설되었고, 지금은 세계적인 규모의 공장을 갖춘 거대 산업단지가 되었다.
그러나 지난 60년간 우리 정부와 울산시민이 만든 빛나는 이 성과는 아쉽게도 80년 전 일본제국이 그렸던 병참기지모습에 더 가깝다. 공업기지 개발 80년, 공업센터 개발 6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울산은 대도시다운 면모보다는 공업단지에 가까운 모습이다. 일본제국과 우리 군사정부가 그린 모습 그대로 말이다. 만 60년 전 계묘년에 군사정부에 의해 본격 시작된 울산공업센터 건설도 ‘완전히 새로운 울산’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의 두 울산개발은 철저히 외부의 힘과 논리에 의한 것이었다.
다시 2023년 계묘년을 맞아 이번에야 말로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완전히 ‘새로운 위대한 울산’을 만들어야 한다.
한삼건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