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특별사면 그리고 ‘법과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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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특별사면 그리고 ‘법과 원칙’
  • 경상일보
  • 승인 2023.01.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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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지난해 11월 말에는 민주노총 산하 화물차연대가 파업을 했다. 안전운임제의 일몰 폐지와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의 확대를 이유로 했다. 정부는 화물차연대의 파업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규정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이 규정이 도입된 후, 18년만에 처음으로 명령을 발동한 것이다.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노사법치주의를 강조했다. 명령을 위반하면 불법이 되는데, 그런 불법행위자에게는 이 법이 정한 형사처벌과 면허취소 등의 불이익을 반드시 집행하겠다는 것이다.

파업 6일 만에 정부가 단호하게 대응을 하자, 경기침체를 걱정하던 많은 국민들은 정부의 조치에 지지를 보냈다. 국민의 지지가 정부쪽으로 기울어지자, 화물차연대도 안전운임제의 한시적 연장 및 추후 재논의를 조건으로 파업을 철회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정부는 국민들의 낮은 지지율을 상승으로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에 정부는 각종 현안에 대해 ‘법과 원칙’을 더욱 강조하고 있고, 강력한 법집행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 법과 원칙을 한참 강조하던 정부는 지난해 연말에 정치인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2020년에 뇌물죄와 횡령죄 등으로 징역 17년형과 벌금 약 130억원을 선고받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남은 징역 15년과 벌금 약 82억원을 면제받았다. 사면 이전부터 건강악화를 이유로 형집행도 받지 않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그는 특별사면이 되자 바로 퇴원해 집으로 갔다. 국가정보원장으로서 정치공작 및 불법사찰을 하고 대통령에게 국정원 활동비를 뇌물로 바친 원세훈 전국정원장, 국정원 활동비를 뇌물로 받은 최경환 전 국회의원, 댓글조작 사건에 연루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도 남은 형을 면제받거나 감형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직권남용죄로 처벌을 받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 국정원을 동원한 민간인 사찰로 처벌을 받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복권됐다.

역시 ‘대마는 불사’라는 격언에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큰 영향력을 가진 거물 정치인은 무슨 죄를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엄정하게 수사하고, 아무리 치열한 법리공방을 거쳐서 형을 확정하였더라도, 그들에게 사법절차는 그저 사면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인 모양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세상의 바깥에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법 앞의 평등’이라는 대원칙은 그들 밑에 있는 국민들 사이에서나 적용되는 원칙처럼 보이기도 한다.

확정된 형의 집행 앞에서 함부로 예외를 인정하고,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한 것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현정부의 기조에 전혀 맞지 않는다. 법과 원칙의 강조로 지지율 상승까지 이끌어낸 정부가 정치인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그렇게 서둘러서 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정부는 국민통합을 위해 한다고 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국민통합에 기여한다고 할 만한 인물이 없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조기사면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다음 총선에 출마할 만한 자기편을 사면복권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동훈 장관은 새해 계묘년의 법무부 신년사에서 다시 “반법치행위에 결연하게 대응해 법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올해 과제라고 밝혔다. “불법적인 수단으로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무관용 원칙에 따라서 엄정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별사면을 주관한 법무부의 신년사치고는 반전에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법무부는 특별사면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지 못함을 보여줬다. 지위가 높은 거물 정치인은 언제든지 사면으로 법과 원칙의 예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따라서 법무부의 신년사는 곧이곧대로 읽히지 않는다. 법무부가 신년사에서 결연한 대응, 무관용 원칙, 엄정한 법집행을 선언하려고 했다면, 지난해 연말의 설득력이 없는 특별사면은 없었던 것이 좋았을 뻔했다.

정희권 민가율합동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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