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새해 아침의 피터법칙(the Peter Princi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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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새해 아침의 피터법칙(the Peter Principle)
  • 경상일보
  • 승인 2023.01.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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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충렬 전 울산부시장·행정학박사

소크라테스가 현인을 찾아 대화 해보니 현명하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자도 소크라테스도 미(美)나 선(善)에 대해 사실상 모르면서 그 자는 안다고 생각했고 소크라테스는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가 분명 우월했다. 소크라테스는 ‘개에게 맹세한다’고 하면서 ‘가장 명성이 높은 사람은 오직 가장 어리석을 뿐이며 그다지 존경을 못 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더 현명하고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변명했다. 더 현명하다고 알려진 정치인·시인·장인(匠人)을 차례로 만났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해에 세시주(歲時酒) 마시며 생각해 봐야 할 법칙이 있다. 조직인 특히 공직자의 자기고찰에 절실한 조직이론이다. 피터 법칙(the Peter Principle)은 한 마디로 ‘계층 조직에서 개인은 무능하게 되는 수준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결국 조직 상층부는 무능한 자들로 가득 차게 된다’고 지적한다. 조직인이 탐욕으로 본인 역량에 벅찬 직위 이상까지 올라간다면 조직 상위자들은 대부분 그 직위 용량에 모자라는 무능한 상태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윗사람일수록 더 무능할 수도 있다. 비록 능력자라 하더라도 고위직에 오래 있다 보면 세상일을 부하나 비서 없이 혼자서는 잘 못하게 된다. 문제는 본인이 무능한데도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는 데 있다.

상관이 무능하기 때문에 부하에 대한 평가도 능력이나 실적보다 예의나 태도 등 비업무적인 요소를 위주로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성과 좋은 직원보다 개인 성향이 부드러운 직원이 고평가되어 결국 리더 주위가 이른바 예스맨들로 둘러싸이는 현상을 ‘피터의 도치(Peter’s Inversion)’라 한다. 현실 조직 상황이 다 이런 건 아니겠으나, 대부분의 상급자들이 똑똑하고 주장 강한 부하보다 능력은 보통이더라도 태도 좋은 직원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다. 태도가 고운 것 자체는 칭찬거리이지만 이것이 아첨으로까지 변질되면 문제다. 피터법칙은 ‘무능 상사와 아첨 부하’의 조직화를 우려하는 것이다.

유능하다고 다 출세하는 게 아닌 까닭은 조직인의 운(運) 또는 관운 때문이라 하겠으나 아첨 잘 하는 사람이 출세하는 것은 고금의 원리다. 아첨은 사실(fact)이 아닌 것을, 또는 과대 포장해 말하는 허위적 비위 맞춤 행위다. 아첨에도 단순한 일반 아첨과 고등 아첨이 있다. 고등 아첨은 상황을 호도·왜곡해 공격적으로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 위험도가 높고 소신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예부터 아첨의 위력은 대단해 중국역사의 첫 패자(霸者) 천하의 제(齊) 환공(桓公)도 명재상 관중(管仲)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간신 역아(易牙)와 수조(竪刁) 등을 중용함으로써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국 행정문화에 관한 영국의 어떤 논문에 ‘공무원이 성공하려면 ‘눈치(nunchi)’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센스’와는 다소 다른 이 ‘눈치’도 그 자체로는 장점이지만 아첨의 기반이 될 소지가 다분한 특질이다.

국가·지방 공직에 정치적으로 임명된 자들은 대개 직위 전문성이나 능력보다 정권 충성도와 기여도 등에 따라 직위를 맡은 자들이다. 자신이 충성을 바친, 자신의 임용 원천인 인사권자가 떠나면 함께 떠나야 한다. 정무적 피명자(被命者)가 주군이 떠난 뒤에도 철 지난 임기 타령을 하며 머물러 있으면 당장 리더십의 상실이 발생하고 이는 곧 피터 법칙 상황이 되는 것이다. 임기제는 본래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니다.

넘침을 경계하는 술잔 계영배(戒盈杯)의 근원은 고대 중국 주(周)나라 때의 의기(●器)라고 하는 쇠그릇이다. 의기는 비면 기울고, 적당히 차면 반듯해지며, 가득 차면 엎어진다. 그릇 용량이 넘쳐도, 멈추는 시기를 놓쳐도 넘어진다. 조직인도 직무가 자신의 용량에 넘치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스스로 용량을 모르거나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실로 위험하다. 주역의 득위(得位)의 개념을 논하지 않더라도 자기 역량의 70퍼센트 수준에 가는 것이 최적이다. 새해 아침 공직자 특히 조직 상위자들은 본인이 피터 법칙 상황에 있는 건 아닌지 엄중히 자기 점검해 봐야 한다.

전충렬 전 울산부시장·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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