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77)]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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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의 건축과 여행 그리고 문화(77)]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
  • 경상일보
  • 승인 2023.01.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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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동서 문화의 교차로이며 용광로인 사마르 칸트. 이곳을 빼고 실크로드의 문명사를 논하기는 어렵다. 실크로드상의 도시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도시 또한 오아시스에서 기원한다. 자라프샨(Zarafshan)강을 터전으로 기원전 6세기부터 도시가 형성되었으니, 중앙아시아권에서는 연륜이 가장 오래된 도시라 할 것이다. 사통팔달의 요지에 자리했기에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종족들이 각축을 벌였다. 알렉산더, 징기스칸, 티무르 등 역사적인 전쟁영웅들이 모두 이곳을 거쳐 갔다.

산스크리트어에서 ‘samarra’는 만나는 장소를 의미한다. 초원의 각 부족들은 종교적 행사나 정치적 회담을 위해 이곳에 모였다. 사방에서 모여들 만큼 교통의 요지였음을 의미한다. 11~13세기에는 페르시아계 사마니드 왕조의 첫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 도시의 위상을 국제적 수준으로 올린 것은 중앙아시아 제국을 건설한 티무르였다. 그는 사마르칸트를 제국의 수도로 삼아 국제도시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티무르(Amir Temur 1336~1405)는 이 도시 역사와 자긍심의 원천이다. 징기스칸의 후예임을 자처했던 그는 14세기 사마르칸트에서 발흥해 지중해에서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중앙아시아 초원에 세운 마지막 제국이다.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는 새로운 제국의 상징이 되었고 전무후무한 도시건설이 이루어졌다. 중동에서부터 인도, 터키에 이르는 광대한 정복지에서 모여드는 재화와 문명, 기술들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냈다. 거대한 입구와 푸른 돔, 세련된 자기 타일로 만들어진 새로운 건축은 유라시아 도성들과 경쟁하면서 중앙아시아 제국 양식의 탄생을 알렸다.

사마르칸트의 중심은 레기스탄(registan) 광장이다. 이 위치는 여섯 갈래의 길이 만나는 교차로였다고 한다. 실크로드상의 교차로에 국제적 교역이 이루어지는 큰 시장이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티무르 시대에는 돔 지붕을 갖는 거대한 쇼핑몰이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정치적 중심인 사마르칸트성과 직접 연결되는 위치였다. 티무르의 손자인 울르그벡(Ulugh Beg 1394~1449년) 시대에 이 광장은 군대 사열과 통치자의 칙령이 발표되는 도시의 주 광장이 되었다.

티무르와 후계자들은 그들이 정복한 중동제국의 도시 문명에 감명을 받았다. 그들은 곧 페르시아 문명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정복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페르시아 인들은 사마르칸트에 이송되어 수도 건설에 투입되었다. 그들은 페르시아 건축의 미학적 천재성과 풍부한 경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페르시아 문명을 중앙아시아로 이식해 또 하나의 경이로운 도시 중심을 만들었던 것이다.

▲ 레기스탄 광장은 가장 오래된 울르그벡 마드라사, 맞은 편에 있는 쉐어 돌(Sher-Dor), 중앙에 자리한 틸리아 카리(Tilya-Kari) 등 3개의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가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 레기스탄 광장은 가장 오래된 울르그벡 마드라사, 맞은 편에 있는 쉐어 돌(Sher-Dor), 중앙에 자리한 틸리아 카리(Tilya-Kari) 등 3개의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가 삼면을 둘러싸고 있다.

레기스탄 광장은 세 개의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가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광장이다. 종교와 교육시설로서 도시의 중심을 만든 것이다. 그 위압적 규모와 화려한 모자이크 외벽이 제국 수도로서의 위상을 과시한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나타나는 웅장하고 화려한 광장은 비현실적으로 경이롭다. 광대한 황야의 사막 지역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광장의 외벽은 랜드마크가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광장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15세기에 건설한 울르그벡 마드라사다. 그 맞은 편에 있는 쉐어 돌(Sher-Dor)과 중앙에 자리한 틸리아 카리(Tilya-Kari)는 모두 17세기에 건설된 것이다. 이슬람 신학교인 마드라사를 수도의 중심에 세운 것은 종교와 학문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물론 이것들이 학교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이슬람 사원(mosque)과 대상 숙소(caravan serai), 시장(bazaar), 수피교 숙소(khanaqah) 등이 포함되어 있는 복합적 시설이었다.

광장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틸리아 카리 마드라사다. 원래는 티무르의 아내인 비비하눔(Biby khanym)을 기념하기 위한 모스크로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17세기에 무너져 다시 지으면서 마드라사를 겸용하게 된 것이다. 그 휘황찬란함은 건축의 수준을 넘어 보석의 차원에 들어선다. 입구에서부터 금박으로 장식된 볼트와 무하르나스에 입을 다물기 어렵다. 돔과 벽, 미르합에 장식된 금박은 중앙아시아의 그 어떤 건물보다 화려한 것이었다. 틸리아(Tilya)라는 이름은 바로 ‘금박’이라는 뜻이다. 중앙홀의 돔 천장은 태양의 황금빛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황홀경이며, 미르합의 무하르나스는 황금 빛 샹들리에처럼 신비경을 연출한다.

영묘건축(mausoleum)도 티무르 제국이 남긴 가장 인상적인 건축 유산 중 하나이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구르 에미르(Gur-Emir)인데, 이는 티무르가 묻힌 영묘를 말한다. 우리로 치면 왕릉과 종묘를 겸하는 시설인데, 이들은 아름다운 건축물로 새로운 유형을 창출했다. 외형으로는 모스크나 마드라사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거대하고 화려한 돔 천장을 갖는 묘실과 그 위로 불쑥 솟은 청색 돔은 중앙아시아식 영묘 건축의 특징을 만들었다. 황금 빛이 쏟아져 내리는 묘실 천장의 장식은 현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탑 형식의 영묘 건축은 이미 10세기 이전부터 페르시아 문명권 일대에 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형식적, 장식적 발전은 티무르 시기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형식은 티무르의 후손인 무굴제국에 이어져 인도 영묘 건축의 뿌리가 되었다. 인도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타지마할도 실은 중앙아시아 영묘 건축의 형식에 바탕을 둔 것이며, 그것은 분명 페르시아 문명의 유전자를 받은 것이다. 모름지기 숲을 보아야 그 나무를 알게 되는 법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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