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새 해의 길 위에서 멘토들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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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새 해의 길 위에서 멘토들을 기리며
  • 경상일보
  • 승인 2023.01.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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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 거친 바람 속을 참 오래도 걸었네, 긴 꿈이었다면 덧없게도 잊힐까.” 최백호의 ‘길 위에서’란 가요의 첫 소절 이다. 바로 지금이, 살아온 일 년이, 지난 생애가 꿈같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이 노래를 듣다보면 처연해지다가 오늘이 소중해지고 숙연해진다. 푸른 잎, 붉은 꽃 같던 내 어여쁜 시간은 지났다. 긴 꿈에서 깨면 찬바람 부는 길 위에 서 있는 것일까? 이제 떠나는 시간과 악수하며 담담히 미소짓는 마음의 내공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삶과 죽음에의 태도란 화두에는 스승이 필요하다. 우리 시대의 멘토였던 두 사람이 생각난다.

구본형 선생은 평범한 이들이 삶 속에서 위대함을 꺼내도록, 그 잠재력이 폭발하도록, 자신을 일으켜 세우도록 도왔던 변화경영전문가였다. 그는 하루를 잘 사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라 했다. 사람은 죽음을 목전에 둘 때 비범한지, 평범한지 드러난다. 그는 폐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삶의 일회성을 수용하며 죽음의 그늘을 보이지 않고 삶을 축제로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임종을 주관한 신부는 그가 거룩함을 삶 속에 가져온 위대한 영성가라고 했다. “인생에는 여러 길이 있다. 스스로 모색해라. 헌신하고 모든 길을 걸으라. 그러나 그 길이 아니더라도 실망하지 말라. 앞에 다른 길이 나오면 슬퍼하지 말고 그 길을 가라. 어느 길로 가든 훌륭함으로 가는 길은 있으니 깊은 인생을 살라.”고 한 그의 말을 되새겨 본다.

작년 2월에 우리의 다른 멘토가 세상을 떠났다. 이십 대의 나이에 기성문단에 대한 ‘우상의 파괴’란 글로 천재의 등장을 알리며 신문사의 논설위원이 되었고, <축소지향의 일본인> 등을 저술해 세계적 지성의 반열에 올랐던 이어령 선생이다.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갓길’이란 단어를 만들고 한국종합예술학교를 세웠다. 그는 췌장암에 걸려 수술을 받은 후 전이 사실을 알고 일체의 항암치료와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택에서 마지막 시간을 사유하며 저술했다. 그는 압박해오는 죽음과 팔씨름을 하면서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매주 화요일 김지수 기자와 만나 ‘마지막 인터뷰’란 수업을 진행해 남은 이들에게 그 깨달음을 하나라도 더 전달해주려 했다.

한국말의 화석에서 금광을 캐냈던 당대 최고의 기호 학자이자 세계적인 비교 문화학자이었고 칸트,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에게도 쫄지 않았던 그이다. 암세포가 복부를 점령하는 것을 보고 두려웠지만 갯벌을 헤쳐 나가는 게 같다며 유머로 관조했다. 부정, 분노, 협상 등 죽음 수용의 5단계를 만들고 수많은 이들의 임종을 도왔던 저명한 정신과의사 미국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조차 막상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분노하며 너무 힘들어 했다. 그렇다. 타인의 임종을 도울 때는 죽음은 철창 안의 호랑이다. 그러나 자신의 차례에서 죽음은 철창을 뛰쳐나온 호랑이인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이 호랑이를 매일 밤 두 눈 부릅뜨고 마주하고 통찰한 귀한 지혜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갔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니 죽음이란 탄생하였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신나게 놀고 있는데 어머니가 이제 그만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란다.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야. 한 커트의 프레임이야. 커트 마다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거지. 한 커트의 프레임에서 관찰이 이뤄지고, 관계가 이뤄져.”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모두가 돌아가는 평등한 수평처럼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두 멘토의 말처럼 자신의 길 위에서 하루를 예술로 만들어 보는 것, 지금 나에게 주어진 한 프레임에 헌신하고 사랑하자. 1월에 나의 12월을 염두에 두고, 아침에 그날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살면서 자신의 임종 순간을 짐작해 보는 것. 이는 일회성 삶을 사는 우리가 자기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이럴 때 우리는 ‘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말할 수 있다. ‘나는 내일 죽을 것처럼 산다. 우리 삶은 흥겨운 축제이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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