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81)]경주 남산 천룡사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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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한국100탑(81)]경주 남산 천룡사지 삼층석탑
  • 경상일보
  • 승인 2023.01.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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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혜숙 수필가

새해 첫날, 해돋이 명소는 소망을 품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는 동해안이 아니라 경주 남산을 오른다. 지난해는 고단했다. 가까운 몇몇이 예고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 힘든 투병을 시작했다. 코로나를 앓은 후 회복을 하지 못해 반년이 넘도록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가족도 옆에 있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다. 때문에 간절함을 안고 천룡사지 삼층석탑을 향해 남산의 열반골에 발을 들인다.

열반이란 미혹과 집착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의 경지다. 번뇌가 사라진 고요한 적정(寂靜)의 세계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듯 골짜기의 기세 좋은 바람이 등을 밀어 올린다. 맵싸한 바람에 코끝이 시릴 때쯤 커다란 곰바위 아래 자리한 관음암이 나타난다. 암자 오른쪽 숲길을 오르면 열반재다. 지장보살이 아리따운 처녀를 구름바위에 태우고 이 산등성이를 넘어 천룡사로 안내하여 영원히 열반에 사는 몸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열반재를 넘으면 넓은 고원 평지가 펼쳐진다.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천룡사터다. 그 중심에 삼층석탑 한 기 우뚝하다. 고위봉을 병풍삼아 새날의 기운을 사방으로 뿜어낸다. 시방세계를 골고루 비추는 무량광이다. 온 몸을 던져서라도 내가 품은 희원을 들어달라고 떼를 써 볼 작정이었지만 그 또한 탐욕임을 깨닫는다. 열반골을 오르는 동안 부처님은 천안으로 헤아리셨고 산 중턱의 절터에 들어서는 순간, ‘다 알고 있느니라.’ 우렁우렁 말씀이 울렸으니까. 오래 살아 둥치에 금이 쩍쩍 간 감나무에 등을 기댄 채 석탑을 바라본다. 나무처럼 겸허히 살아내지 못한 탓에 얼른 무릎을 꿇는다.

천룡사지를 찾은 사람들은 깨어지고 이끼 낀 석조유구 곁에 쉬었다 간다. 가족끼리 와서 한참을 머물기도 한다. 등산 팀도 지난다. 먹물 옷을 입은 보살은 부신 듯 손차양을 하고 몸을 한껏 뒤로 젖혀 탑을 올려다본다. 그러나 삼층석탑은 오직 나만을 위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무너지지 말고 깊어지라고.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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