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문답]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호젓한 흙길…초여름 산행에 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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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문답]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호젓한 흙길…초여름 산행에 제격
  • 김창식
  • 승인 2023.06.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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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버리산악회 회원들이 울산 울주군 언양읍 구수리산 충골과 마을 사이 계곡을 따라 만들어진 등산로를 걷고 있다.

1.문수산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면 율리와 범서읍 천상리 경계지점에 있다. 사방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쉽게 시야에 들어온다. 문수산은 문수보살의 이름을 딴 산이다. 문수보살은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문수보살은 중국의 오대산에 상주한다고 하는데, 오대산은 신라의 자장율사와 관련이 깊은 산이다. 자장율사는 울산의 태화사 창건설화에 등장한다. 문수보살은 대승불교에서 위상이 굉장히 높은 보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과 비교해 인기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일본이나 티베트 불교에서는 문수보살의 진언을 흔히 외우는 등 한국보다 인기가 높다.

문수산 정상부 둘레를 마치 머리띠를 감은 듯 쌓은 고대 산성이 있으니 문수산성이다. 산성은 평시엔 곡식과 무기를 비축해두고 사람은 거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침이 있으면 관아 주변 군, 관, 민은 산성으로 대피한다. 문수산성도 인근 백성들의 대피 및 방어용 기능을 했을 것이다. 고대 굴아화현은 문수산성 북동쪽 5.5㎞ 지점에 있었다. 이에 문수산성이 굴아화현 초기 치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수산 아래에 신라 시대의 울산 중심 관아인 ‘굴정현청(屈井縣廳)’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문수산 일대는 고대 울산의 중심 치소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수산성은 서남쪽 양산과 언양을 거쳐 서북쪽의 경주에 이르는 길과 방어진과 울산시가지, 언양을 잇는 길을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문수산성의 흔적은 등산로 따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등산로는 임도와 겹치는 구간이 많은데, 임도 아래 급경사지에는 무너진 성 돌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산성은 절 입구에서 산 정상까지 난 임도 중 가장 높은 서쪽 임도에서 잘 보인다.

▲ 범서옛길 탐방로 이정표.
▲ 범서옛길 탐방로 이정표.

2. 문수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많다. 그중 청량면 율리 방면에서 시작하는 코스가 제일 흔하며 이 외에 무거동 울산대학교 쪽과 범서읍 천상 쪽에서 오르는 코스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찾지는 않지만, 걷기 편하면서도 전망 좋은 코스가 있으니 서쪽 방면 코스가 그것이다. 서쪽 방면 코스는 가운데 2㎞ 정도의 긴 계곡(충골)을 중심으로 빙 둘러 있다. 서북쪽이든 서남쪽이든 어느 쪽에서 오르더라도 삼거리 갈림길에서 만나 문수산 정상으로 이어져 있다. 따라서 문수산 정상을 가든 가지 않든 한쪽을 출발지로 하고 다른 한쪽을 도착지로 할 수 있다.

이날 나는 문수산 서북쪽 능선으로 올라서 문수산 서남쪽 능선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구체적인 코스는 ‘대암교-충골 입구-신격호 회장 선친 묘소-무동 갈림길-(범골)-감태봉 갈림길-(진등골)-땅고개 만디-삼거리 쉼터-문수산 정상-삼거리 쉼터-관음곡(관음저수지) 갈림길-둔기리(대암댐) 갈림길-체육시설-둔기천(물뱀골) 갈림길-서당산골 입구-대암교’이다.

반천마을과 구수리 대동마을을 잇는 다리가 대암교이다. 대암교에서 강 따라 하류로 걷다 보면 얼마 가지 않아서 삼동면 쪽에서 흘러나오는 둔기천이 태화강과 합쳐지는 곳을 만나게 되는데,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 하여 합수(合水)라고 부른다. 합수를 지나고 서당산골 입구를 지나면 배미소(뱀소)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계곡 입구를 만나는데 이 계곡이 충골이다. 계곡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첫 번째 나오는 골이 갓골이다. 갓골은 갓처럼 생긴 재 아래 골, 갓을 재배했던 곳, 삿갓을 많이 만들던 곳, 맨 가장자리 곧 첫 번째 골이라는 뜻 등이 있다. 갓골을 따라 오르다가 오른쪽 비탈길이 나오는데 비탈길을 따라서 조금만 가면 롯데그룹의 창업자인 고 신격호 회장의 부모 묘소가 나온다. 묘를 우회하여 오르다 보면 이내 정상이고 정상에서는 무동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갓골을 오르는 길도 좋았지만, 여기서부터 도착지인 서당산골 입구까지는 대부분이 능선길이고 초록의 나무들과 함께 하는 흙길이어서 걷기에 더없이 좋다. 능선의 양옆으로 계곡이 연이어진다. 능선 오른쪽으로는 갓골에 이어 가늘고 긴 골짜기라는 뜻의 가는골,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저티골(절골), 범이 자주 출몰한다고 하는 범골, 그리고 긴 등 아래 있다고 하여 긴등골이라고도 하는 진등골이다. 왼쪽으로는 무동안골, 대밭골, 도라지골, 연지골 등이 있다. 연지골은 연못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수산 서북 능선을 지나 서남 능선에 가면 능선의 옆으로 계곡들이 이어진다. 진행 방향에서 오른쪽에 있는 골이 서당산골이다. 서당산은 서당이 있었던 데서 나온 말이다. 왼쪽으로는 정골, 관음곡, 색배골, 관안골, 물뱀골 등이 연이어 나온다. 서남쪽 능선은 인근의 대암호의 멋진 풍경이 걷는 내내 눈길 따라 함께 한다.

나는 옛 울산 사람들의 사연을 품고 있는, 나무 그늘 많은 흙길인 문수산 서릉길을 사람들이 한 번쯤 걸었으면 좋겠다.



3. 문수산 서쪽 능선에는 옛날 범서읍 천상 사람들이 언양으로 가던 울주의 옛길이 있다. 울주의 옛길은 ‘천상-대밭골-어림지못-땅고개만디-충골-관음골-모개나무골-상작마을-하작마을-하잠마을-(하잠리요지군)-큰비늘티골-구수마을-도호(지금은 KTX역으로 인해 사라진 마을)-언양’의 길이 그것이다. 하잠마을에서 하잠요지군과 큰비늘티골 사이는 대암댐으로 인한 수몰 지역으로 현재는 길이 없다. 충골에서 작동으로 가지 않고 골안골을 지나 둔기리를 거쳐서 구수리 대동마을에서 등골-체봉골-물막골로 해서 구수마을로 가는 길도 있다. 오래전 무동마을이 삼동면이었을 때 무동마을 아이들은 그 먼 길을 걸어서 삼동초등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울주 옛길은 길의 흔적은 분명한데 현재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어리버리산악회 회장
▲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어리버리산악회 회장

충골은 계곡 이름이면서도 마을 이름이다. 대략 50여 년 전에 10여 가구가 살았던 곳이다. 옛날에 충신이 난 곳이라 하여 충골이라고 한다. 계곡 따라 걸으면 한 시간 남짓하면 도착할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마을까지 이르는 길이 참 좋다. 원체 외진 곳인 탓에 아직도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다.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인근의 반천, 대동, 반송 등으로 나와서 살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한때는 태풍으로 인해 충골 가는 길이 거의 없어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포크레인 등으로 길을 만들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드나들기 시작한다. 대부분 옛날에 살았던 사람들이나 그 후손들이 가끔 들러 농사를 짓는 수준이다. 예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잡풀 속 감나무들이 예전에 사람이 살았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송철호 인문고전평론가·어리버리산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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