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그래픽 태화강]댐 준공으로 마을 수몰, 제2 반구대암각화 수장돼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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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그래픽 태화강]댐 준공으로 마을 수몰, 제2 반구대암각화 수장돼 있을지도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0.04.02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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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太和江百里 : 28. 사연댐과 한실마을(상)
▲ 사연댐에서 바라 본 한실마을 전경.

울산 공업센터 건설에 맞춰 축조
대곡천변 한실마을 등 대부분 수몰
매장문화재 발굴 조사도 없이 진행
한실골 일대 문화재도 함께 물속에
산골짜기 위치 16가구만 명맥 유지
외딴 산길 하나뿐인 ‘오지 중 오지’


◇수몰 주민들의 애환 담긴 사연댐

대곡천에는 2개의 댐이 있다. 상류의 댐이 대곡댐이고 하류에 있는 것이 사연댐이다. 대곡댐에는 근처에 대곡박물관이 세워져 있어 수몰 이주민들의 곡절과 유물발굴 성과 등이 상세하게 전시돼 있지만 사연댐을 축조할 때는 유물 발굴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마을 전체가 통째로 수몰된 것이다.

사연댐은 1962~1965년 사이에 대곡천 수계의 물을 얻기 위해 건설된 것으로, 높이 46m, 길이 300m이다. 유역면적은 124.5㎢, 홍수위는 63.2m, 만수위는 60m, 저수위는 45m이다. 또 저수 총량은 2500만㎥이다. 이 사연댐은 처음 공업용수댐으로 건설됐다. 그 당시 정부는 울산공업센터를 건설하면서 함께 사연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수몰 대상 지역은 세인마을, 옹태마을 그리고 상류지역인 한실마을 일대였다. 당시 매장문화재 발굴절차 없이 공사를 진행하다보니 특히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이 뛰어났던 한실골 일대는 모든 문화재가 고스란히 수몰될 수밖에 없었다. 1965년 사연댐 준공으로 세인마을 20가구, 옹태마을 40가구, 한실마을 88가구가 이주했다. 당시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의 서쪽인 건너각단에 15가구, 남쪽에 20가구, 중간마을에 13가구, 동쪽마을에 30가구가, 웃각단에 1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한실마을은 대곡천에서도 가장 큰 마을이었다. 한실마을이 가장 크다보니 1943년 언양공립보통학교(현 언양초등학교) 간이학교가 한실마을에 설립됐다. 간이학교는 대곡천을 따라 형성된 반구, 옹태, 세인마을 아이들의 교육장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모두 폐교됐다.

사연댐은 울산광역시의 주 식수원인 회야댐 보다 훨씬 오래된 댐이다. 회야댐은 1986년에 완공됐다. 회야댐보다 20여년 먼저 축조된 사연댐에는 아직도 매장문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사연댐 호안 절벽에는 제2의 반구대암각화가 그려져 있을지 모를 일이다.

▲ 사연댐 공사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시골 어른들이 모여 있다. <사진으로 본 울산 100년>


◇가장 큰 마을 대곡리 ‘한실마을’

‘대곡(大谷)’은 이름 그대로 큰 골짜기를 일컫는다. 한자를 우리말로 풀어보면 ‘한실’이 된다. 한실(대곡)이라는 마을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언양읍 대곡리의 한실마을 역시 많은 것들이 모이는 큰 마을이었다. 사연댐을 만들기 전까지 대곡리 인근에는 한실마을, 반구마을, 서당마을, 신리마을 등에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1965년 12월28일 사연댐이 완공되면서 대부분의 마을이 수몰됐다.

반구마을에서 한실마을까지의 ‘한실 길’은 산 넘어 3㎞ 남짓 된다. 이 길은 ‘나뭇길’로도 불리는 길이다. 반구마을에서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고갯길 정상인 ‘마당머리(마당멀리)’에 이른다. 이 곳에서 고갯길을 넘어 비탈길을 따라 한참 가다보면 마침내 한실마을 입구에 다다른다.

 

한실마을은 차도 들어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행여 눈이라도 많이 오면 영락없이 찻길이 끊긴다. 사연댐을 막기 전에만 해도 한실은 수몰 마을 가운데 가장 큰 마을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물 밑으로 가라앉고 마을로 들어가는 산길도 외딴 길 하나밖에 없는 오지 중의 오지가 돼 버렸다.

그런던 중 1985년 일부 주민들이 산판(벌목)을 하기 위해 오솔길을 확장하고 비포장 도로를 냈다. 현재는 그 오솔길이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 한실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야 하고, 마을로 들어가는 내리막길은 몇번이나 급커브를 꺾어야 할만큼 급경사다.

현재 한실마을 원주민은 10가구이며, 6가구의 외지인을 포함하면 총 16가구가 밭농사를 일구며 살고 있다.

수몰 전 한실 본동에는 윗마을에 ‘월성박씨’, 아랫마을에 ‘김해김씨’의 집성촌이 있었다. 그러나 한실마을 입향조로부터 400여 년을 살아온 김씨 집성촌은 대부분의 농토가 수몰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한실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박씨들의 농토는 수몰지역이 아닌 산골짜기에 있었기 때문에 20여 가구가 지대가 높은 골짜기로 이주했다. 글·사진=이재명 논설위원/참조:<반구대 선사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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