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울산 유림과 파리장서 사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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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울산 유림과 파리장서 사건(하)
  • 경상일보
  • 승인 2024.04.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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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주환 울산향교 전교

당시 심산이 머물렀던 백양사는 울산 유림들이 활동했던 향교와 지척 간이었다. 걸어가더라도 20~30분 남짓 거리였다. 따라서 울산 유림 중에는 우리나라 유림의 거두였던 심산을 찾아가 그를 위로하고 또 항일의식을 키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일부는 군자금을 전달했을 것이지만 이에 대한 얘기가 구전으로만 전해 올 뿐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울산에는 아직 파리장서 사건 관련 기념탑이나 기념관이 없다 보니 파리장서의 역사적 의미를 아는 시민이 없다. 아쉽게도 파리장서 흔적이 그나마 남아 있는 입암마을이 곧 아파트 단지로 개발될 것이라고 한다. 입암은 일제강점기 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했다. 가산은 물론이고 문암 그리고 문암의 딸 응교가 모두 이 마을 출신이다. 또 이 마을에는 심삼 김창숙이 군자금 모금에 앞장서다가 자동차 사고로 허리를 다쳤을 때 문암 집에 머물면서 2개월 이상 요양했는데 그 집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입암마을에는 가산이 독립운동을 벌일 때 살았던 집이 그대로 있다.

이외에도 심산이 입암에 머무는 동안 석아 이종락 어른을 비롯한 적지 않은 마을 유림이 군자금을 내는 등 심산의 항일운동을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입암마을이 이런 유림의 애국적 활동을 보여주는 기념관 하나 없이 아파트 단지가 되면 울산의 자랑스러운 항일운동 흔적이 사라지게 된다.

이 때문에 한 때는 입암마을 주민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독립운동가 마을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 지금도 이 계획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울산향교로 볼 때도 입암마을은 학성이씨 등 울산에서는 유림이 가장 많이 살았던 마을이었고 지금도 타지역에 비해 유림이 많다. 따라서 울산 유림은 파리장서운동을 비롯한 심산과 가산 그리고 문암의 항일운동 역사와 활동이 남아 있는 입암마을을 단순히 아파트 단지로만 조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곳에 파리장서 관련 기념관을 건립해 파리장서 사건의 정신과 역사적 의미를 재 조명하고 이 기념관이 후세들을 위한 교육체험관이 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실제로 서울을 비롯한 거창, 밀양, 합천, 홍성, 정읍, 고창, 봉화, 김해, 산청 등 울산보다 시세가 약한 도시도 지역유림의 애국 활동을 보여주는 파리장서 기념비를 오래 전 세워놓고 매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울산향교도 2019년 이동필 전교를 비롯한 울산 유림이 중심이 되어 파리장서 사건 100주년을 맞아 기념탑을 세우기로 하고 이를 추진하다가 코로나로 무산되고 말아 아쉬움을 주고 있다. 기념탑 건립은 늦은 감이 있지만 울산향교가 곧 추진할 예정이다. 기념관 건립은 울산향교의 의지만으로는 힘들다. 우선 입암마을 주민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특히 아파트 사업을 시행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석암과 가산이 학성이씨 문중임을 생각하면 학성이씨 유림이 앞장서는 것도 바람직하다. 울산의 독립운동 성지인 입암마을에 파리장서 기념관을 세우는 일은 울산시민 모두의 애국정신을 살리는 일인 만큼 울산시민 전체가 관심을 갖고 앞장서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엄주환 울산향교 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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