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새마을 도로’와 ‘일몰제’ 폐지 도로에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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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새마을 도로’와 ‘일몰제’ 폐지 도로에 생명을
  • 경상일보
  • 승인 2024.04.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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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장·공학박사

며칠 전 지역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울주군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관내 363개 마을의 비법정 도로가 1000만㎡나 된다는 내용이었다. 비법정도로는 새마을 사업 때 확장되었으나 소유권과 지목 등 지적공부 정리가 되지 않고, 따라서 행정에 의해 지정 고시나 공고가 되지 않은 도로 같은 것이다. 즉, 겉으로 보기에는 차가 다니는 멀쩡한 도로지만 건축허가를 받을 수 없거나, 사유지가 편입되었다는 이유로 땅 주인이 막아서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런 도로는 주민 불편과 갈등유발, 재산권 행사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지만, 막상 일이 터지기 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정주 여건의 으뜸 조건이 편리한 도로 임을 감안하면 이 수치는 울주군 관내 수많은 마을의 정주 여건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도로를 둘러싼 문제 중 다른 하나는 지난 2020년 7월1일에 일몰제로 폐지된 도시계획도로다. 울주군의 경우 일몰제에 의한 폐지 20년 전인 2000년 3월에 울주군 전역에 주거지역과 함께 수백 개의 도로를 새로 결정 고시했지만, 그동안 건축허가 등에 규제만 남기고 실제로 도로개설이 된 곳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용도지역은 ‘주거지역’으로 남았는데, 도시계획도로가 전무한 마을이 너무 많다는 의미다. 지난 20년간 도시계획에 따라 주택을 신축하거나 공장을 지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계획도로가 사라지면서 낭패를 당하고 있다.

‘도로’가 중요한 이유는 차량과 사람의 통행을 위해 쓰이는 본연의 역할 외에 건축물의 건축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건축법상 대지가 일정 기준의 도로와 접하지 못하면 건축허가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도로의 효용을 모두가 잘 알기 때문에 자가용도 없던 1970년대 초에 시작된 새마을 사업 때도 만사를 제쳐 놓고 ‘마을 길’부터 넓혔다. 마을 어른들에게 들어보면, 당시 새마을 도로는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공무원, 편입 토지 소유주 등이 모여서 줄을 당겨 가며 도로선과 너비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행정과 주민이 합의해 새마을 도로를 개설했지만, 지금까지도 법적 지위를 얻지 못해서 문제다.

하지만 새마을 도로가 준 편익은 대단했다. 겨우 지게나 지고 지나다니던 길에 리어카가 다니면서 농사는 물론 물품 운반 등 여러 일이 편리해졌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집집마다 경운기가 들어왔고, 80년대 후반 즈음에는 농가 마당에도 자가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콤바인이며 이앙기 같은 농기계가 엔진소리도 우렁차게 집 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뿐 아니다. 넓어진 길로는 상수도와 하수도가 차례로 깔리고, 드디어는 도시가스 관로까지 마을마다 집집마다 들어오게 되었다.

집을 지을 수 있는 도로 폭은 건축법 2조 11항 ‘도로’의 정의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4m를 넘어야 하지만 여건상 이런 구조를 갖추지 못해도 법정 도로가 될 수 있다. 즉, 건축법 45조 2항에는 “주민이 오랫동안 통행로로 이용하고 있는 사실상의 통로로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것인 경우”는 도로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울산광역시의 현행 건축조례는 이것을 받아서 23조 2항에 “사실상의 도로로서 새마을 사업 등으로 포장되거나 확장된 도로”라고 명기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도 울주군 등 자치단체의 고시나 공고가 있어야 한다.

이제 울주군이 나설 차례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내 땅이 일부 편입되었다고 현황도로를 막는 등 주민 갈등을 유발하고 마을의 안녕을 깨는 일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마을 도로 중 법정도로 지정에서 누락된 곳을 찾아서 소유권과 지적정리를 서둘러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울주군의 비법정도로 중 사유지는 200만㎡로 전체의 20%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해서 이 문제를 풀면 한 번에 많은 예산이 들지도 않는다. 즉, ‘주거지역’에 속하면서 갈등이 있는 곳, 개발 압력이 높은 곳부터 우선 시행하고, 또한 민법의 ‘취득시효’ 적용이 가능한 부분을 파악한다면 예산 부담은 훨씬 줄어들 수도 있다. 한편, 일몰제로 신축 주택은 있는데 도로가 사라진 마을, ‘주거지역’인데 도로 계획조차 없는 마을은 우리의 치부다. 따라서 지난 20년간 주거지역이면서 건축허가가 난 구간은 반드시 재입안해 도로를 개설해야 행정의 신뢰 회복과 주민 피해를 해소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새마을 도로와 일몰제 폐지 도로가 제 모습을 갖추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정주 여건 개선을 통한 지역 활성화와 인구 유입, 갈등 방지를 위한 최고, 최선의 정책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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